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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2020년 가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가을호 기획특집] 송재학 - 상상보다 더 끔찍한 현실의 이름, 질병

상상보다 더 끔찍한 현실의 이름, 질병

-이상의 시 「內部」에 대하여

 

마산 가포에 조선총독부 직영 결핵요양소가 세워진 것은 1941년. 1882년 코흐가 결핵균을 발견하고 1928년 황해도 해주에 기독교 조선 감리교회 선교사에 의해 결핵환자를 위한 해주구세요양원이 세워졌다. 1920년대의 세브란스병원의 통계에 의하면 외래환자 중 30%가 결핵환자였으며 전국적으로 매년 5만 명이 결핵으로 사망하였고, 1942년의 기록에는 당시 조선에는 40만 명의 결핵 환자가 있다고 보고되었다. 일제 강점기, 충분한 영양과 좋은 공기 그리고 휴양이 당시에는 최선의 결핵 치료법이었다. 해방 이후 마산의 결핵요양소는 국립마산병원으로 바뀐다. 신선한 공기와 따뜻한 날씨를 보유한 마산은 이미 그 이전부터 우리나라 결핵 치료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국립신생결핵요양원, 마산교통요양원, 국립마산요양소, 제36육군병원, 공군결핵요양소, 진해해군병원 등이 중심이 되고 결핵전문 개인의원도 많이 설립되어 있었다. 터키의 파묵칼레가 온천수를 배경으로 일찍부터 요양 도시의 명성을 떨친 것과 다르지 않다. 파묵칼레는 하얀 온천수로 목화의 성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고대 도시 히에라폴리스가 자연스럽게 세워졌고 역설적으로 도시 외곽에는 치료 중중 죽은 사람들의 방대한 묘지가 있었다.

결핵을 매개로 나도향, 임화, 권환, 이영도, 구상, 등이 마산에서 치료와 요양을 했다. 나도향은 마산에서 이은상의 집에서 3개월 정도 식객으로 머물렀다. 단편,「피 묻은 편지 몇 쪽」(1926년 4월, 《신민》)에 마산의 생활을 생생하게 옮겼다. “마산에 온 지도 벌써 두 주일이 넘었습니다. 서울서 마산을 동경할 적에는 얼마나 아름다운 마산이었는지요! 그러나 이 마산에 딱 와서 보니까 동경할 적에 그 아름다운 마산이 아니요, 환멸의 섬섬함을 주는 쓸쓸한 마산이었나이다.” 이 소설은 염상섭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다. 그해 8월 나도향은 스물다섯의 나이로 요절한다. 나도향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실렸는데 “오래동안 위장병으로 시내 남대문통 오뎡목 삼십일번디 자택에서 신음하든 중 재작 이십륙일 오후 한시 경에 이십옷의 앗까운 청춘을 일긔로 다시 도라오지 못할 최후의 길을 떠낫고 말엇”다는 기사였다. 사인이 위장병이라고 보도되었다. 결핵의 전염성을 우려한 보도 통제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김윤식은 나도향의 결핵을 “메타포로서의 결핵, 그것이 백조파로 대표되는 문학”이기에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감수성과 조숙성 등의 은유로 작용했음을 파악한다.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결핵의 상징에 맨 앞장선 낭만성은 이미 여러 차례 논의된 바가 있다.

1935년은 카프의 해산이라는 문학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해 여름 마산에 내려가 카프의 자료를 정리하면서 임화는 결핵 치료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거창 지주의 딸인 지하련(본명 이숙희, 필명 이현욱, 1940년 단편소설 「결별」(《문장》)로 등단)을 만나 결혼한다. 지하련과 임화는 이전의 동경 체류시 서로 알던 사이이다. 아내와 이혼한 임화는 자신을 헌신적으로 간병해주던 지하련과 혼인한다. 임화에게 마산/결핵은 카프의 정리, 이후 그의 문학사적 행적과 맞물린 주요한 시절이었다.

국립마산병원에서 김대규가 펴낸 결핵계몽지《요우》, 《보건세계》 및 남윤철 민웅식 박철석 등의 펴낸 동인지 《청포도》는 4집까지 나왔다. 1960년대에는 결핵문학동인인 무화과 동인회에서 『무화과』를 6집까지 출간했다. 그 자료들은 창원의 경남문학관에 보존되어 있다. 해주의 해주구세요양원에서도 1938년 《요양촌》이라는 보건 잡지가 창간되어 1940년 종간까지 2년 여 동안 발행된다. 《요양촌》에서 우리는 임화와 이태준의 수필, 박태원의 소설 등을 만날 수 있다. 그리하여 한국 문학의 갈래에 ‘결핵 문학’의 텍스트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소설가 김유정은 1933년 결핵의 발병이 시작되어 1937년에 요절한다. 죽기 며칠 전 휘문고 동창 안회남에게 보낸 편지에 처절한 투병기가 고스란히 실려 있다.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만하고 누워 있다. 그리고 맹열이다. (생략) 닭 삼십 마리를 고아 먹고, 땅꾼을 사서 살모사와 구렁이를 십여 마리 달여 먹겠다.

 

왜 결핵이었을까. 문인들이 쉬이 공유했던 결핵의 반대쪽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문학전문기자로 활동하는 박해현 논설위원이 소설가 아이리스 머독(1919∼1999)의 치매에 대하여 흥미로운 칼럼을 썼다. 2004년 영국 런던대 인지신경과학연구소가 소설가 머독의 치매에 대해 조사한 바, 첫 소설 「그물을 헤치고」와 예순 살에 발표한 「바다여, 바다여」와 마지막 소설 「잭슨의 딜레마」를 바탕으로 대조를 했다. 「그물을 헤치고」는 당연히 휘황찬란한 지성과 감성의 결합, 「바다여, 바다여」는 풍부한 어휘력을 드러내는데 마지막 소설 「잭슨의 딜레마」는 형편없는 문장들이 등장한다고 분석했다. 즉 마지막 소설 집필 시에 이미 치매의 징후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치매가 글쓰기의 적이라는 사실의 증거이다. 당연히 치매는 문인들이 앓기 어려운 질병이다. 문인들의 결핵과 비슷한 의미의 동류항은 당연히 자살이지 않을까.

 

이상은 결핵 문학의 상징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당대의 미디어를 지배한 결핵의 이미지는 지극히 낭만화되고 신화화된 결핵의 표상”이라는 해석이 있다. “결핵에 대한 낭만적 신화의 중핵적 이미지는 그것이 천재의 병이며, 아름다운 청춘 남녀에게 발병한다는 점일 것이다. 폐병의 증상인 창백하고 파리한 외양은 미 혹은 미인의 조건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점이었다.”라는 것은 결핵의 문화사 측면(福田眞人, 『結核の文化史 : 近代日本における病のイメ-ジ』, 名古屋大學出版會, 1995) 에서도 기술되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의 결핵의 문화사는 “현미경, 엑스레이, 주사 등 서양의학의 과학적인 위력을 인식하는 동시에 일제의 쌀 수탈로 허약해진 조선인들의 영양상태와도 관계가 있다”(표정옥, 「은유와 상징의 결핵 담론에서 근대 문학의 과학 담론으로의 변환에 대한 기호학적 연구」)는 논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즉 길을 펴지 못한 靑春”이던 이상의 사인은 동경 시절 그를 보살폈던 김소운의 증언으로 매독으로 추정되기도 했지만(김소운이 『李箱異常』에서 “사망진단서에 적힌 死因은 폐결핵이 아니고 ‘매독성뇌결핵’이었다”라고 단정했을 때 그 병은 이상에 대한 청년 김소운의 심리가 아닐까 하는 추정이 가능하다. 매독성뇌결핵은 여러 논자가 지적한 바 존재하지 않는 병명이다. 이상의 임종을 지켜보고, 이상의 아내인 변동림의 동경 체재까지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김소운이 이상의 병을 매독성뇌결핵이라고 증언한 것은 그의 죽음 앞에 매독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획득된 이미지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물론 김소운은 수필가로서의 이후의 생애를 생각하면 뒤틀린 사람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젊은 날 희대의 천재와 밀접하게 교류한 청년 문학가 김소운의 심리는 어떠했을까), 이후의 연구로 결핵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상윤, 이광수, 채만식, 박용철 등의 작가들 중에서 유독 이상과 결핵과의 관계가 유난히 또렷하다. 이상 문학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죽음 이전의 이미지들인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회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리 속에 의례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파라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소, 가증할 상식의 병이오”(단편「날개」)라는 유약하고 화사한 이미지들 너머 넘실거리는 체념은 병의 영향이 아닐 수 없다. 1936년 새로운 활력을 찾기 위해 시작한 동경행 이후 요절했다는 사실도 그 시절 결핵으로부터의 도피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단편 「동해」, 「실낙원」 속의 자의식 또한 폐결핵에서 영향받은 색조라고 할 수 있다. 1929년 첫 징후를 보인 이상의 결핵은 1930년에 1차 각혈이 있었고 1932년에 2차 각혈이 있었다. 이상은 1937년 4월 17일 동경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사망했다.

 

이상의 시 「危篤」은 「禁制」,「追求」, 「沈沒」, 「絶壁」, 「白晝」, 「門閥」, 「位置」, 「賣春」, 「生涯」, 「內部」, 「肉親」, 「自像」 등 모두 12 수로 이루어진 연작시이다. 그중 「內部」(조선일보, 1936. 10. 9.)는 일찍 결핵/각혈과 글쓰기의 상징이 합쳐졌다는 김면수의 흥미로운 지적(「결핵의 수사와 임상적 상상력」, 『민족문학사연구』, 2001)을 이왕에 획득한 시편이다. 시 「內部」를 자세히 분석함으로써 우리는 당대 지식인의 결핵/질병에 대한 인식을 경험치로 공유할 수 있다.

 

입안에짠맛이돈다. 血管으로淋漓한墨痕이몰려들어왓나보다. 懺悔로벗어놓은내구긴皮膚는白紙로도로오고붓지나간자리에피가롱저매첫다. 尨大한墨痕의奔流는온갖合音이리니分揀할길이없고다므른입안에그득찬序言이캄캄하다. 생각하는無力이이윽고입을뻐겨제치지못하니審判바드려야陳述할길이업고溺愛에잠기면버언저減刑하야버린典故만이罪業이되어이生理속에영원히氣絶하려나보다

 

띄어쓰기 없는 시의 외형은 억압된 심리 혹은 분출해야 할 감정의 흐름과 일치한다. 또한 시의 내면이 가장 먼저 드러내는 병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혹은 억제해야 하는 불안의 의미망과 매듭 없이 이어진다. 등장하는 언어들의 성향 또한 그러한 억압, 분출, 불안에 기여하고 있다. 해석의 편의를 위해 띄어쓰기를 하고 문장 식별 번호로 정리해보면,

 

1) 입안에 짠맛이 돈다.

2) 血管으로 淋漓한 墨痕이 몰려 들어왓나 보다.

3) 懺悔로 벗어놓은 내 구긴 皮膚는 白紙로도 오고 붓지나간 자리에 피가 롱저 매첫다.

4) 尨大한 墨痕의 奔流는 온갖 合音이리니 分揀 할 길이 없고 다므른 입안에 그득찬 序言이 캄캄하다.

5) 생각하는 無力이 이윽고 입을 뻐겨 제치지 못하니 審判 바드려야 陳述할 길이 업고 溺愛에 잠기면 버언저 減刑 하야버린 典故만이 罪業이 되어 이 生理 속에 영원히 氣絶하려나보다.

 

복잡해 보이는 5개의 문장이 서로 엉킨 듯싶지만 기실, 시간과 정념의 순서를 따라가고 있다. 도입부에서 언급된 입 안의 짠맛은 혈관으로 墨痕이 몰려 들어왔기 때문이라는 진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묵흔 때문에 짠맛을 느낄까. 묵흔은 글씨를 쓴 붓의 자국이고 淋漓는 몸에 피 땀 물 따위의 액체가 흘러 흥건한 모양이다. 임리한 묵흔은 먹물이 흥건한 붓의 자국이다. 따라서 입 안의 짠맛은 병중에서도 밤새 글쓰기에 몰두한 신체의 피로도와 불안의 경험지수가 맞물린 상태. 병과 글쓰기가 묘하게 서로 삼투하면서 서로 상관하는 육체와 심리의 이중 구조이다.

3)은 그러한 삼투 현상의 클라이맥스를 보여준다. 구긴 피부가 글쓰기의 바탕인 백지/원고지가 되는 현상은 결핵의 창백한 표징이 하얀 원고지의 배역을 맡았다고 짐작해보면 쉽게 설명이 된다. 그러니까 붓지나간 자리라는 글쓰기 이후에 피가 아롱져 맺히는 현상은 글쓰기 이후의 각혈(심한 노동 이후의 각혈과 심리적 압박감 이후의 각혈과 다르지 않다)이라는 실재와 만나는 상황이다. 결핵 속의 글쓰기는 나도향의 여러 산문에서도 등장하거니와, 당신 병을 앓았던 문인들에게 병의 치료를 위해서도 ‘글쓰기 - 원고료’는 외면할 수 없는 생계 수단이었다.

4)는 3)과 연결된 시의 정점으로 각혈의 정점에 대한 묘사이다. 끔찍한 각혈이 온갖 소리의 합이고 입안에 가득 찬 피와 序言을 연결시킨 이미지가 긴장과 개성을 앞장 세운다. 왜 서언이었을까. 이상은 자신의 병이 이후 자신의 문학의 맨 앞에 위치하리라는 갈망을 가졌다. 결핵으로 인해 달라진 자신의 문학이 자신의 생을 바꾸면서 문학도 달라지리라는 예감을 가졌고, 따라서 입 안에 가득한 핏물/서언이 결말이 아니고 새로운 문학의 처음이기를 바랐을 것이다. 죽음이 곧 닥치리라는 불길함도 떨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시의 발표는 1936년 10월 동경행 전후, 죽음을 반년 앞둔 사람의 절박함과 닮았다. 「烏瞰圖-詩第九號 銃口」(1934.8.3.)에서도 유사한 표현이 있다.“나는銃쏘으듯키눈을감이며한방銃彈대신에나는참나의입으로무엇을내여배앗헛드냐”처럼 총을 쏘듯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는 부분과 연결될 수 있다. 당시 결핵의 사망률이 치명적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각혈의 공포가 얼마나 요동쳤을지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 5) 문장에서 “생각하는 無力이 이윽고 입을 뻐겨 제치지 못하”는 병에 의한 무력감이 이 시에서 가장 긴 문장이 된다. 여기의 ‘입’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상징이다. 또한 입은 각혈의 입이자 말의 입이다. “審判 바드려야 陳述할 길이 업”는 무력감은 결핵 치료가 뾰족한 방법이 없던 당시에 이 병을 죄와 벌의 현상으로 확장하여 사유하는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그러기에 ‘溺愛’라는 낯선 단어가 등장했는지 모르겠다. 지나치게 귀여워한다는 사전적 의미를 염두에 둔다면 익애의 시적 의미는 분명 나르시시즘에 가깝다. 그러기에 질병의 반복이 “減刑 하야버린 典故”가 되고 “罪業이 되”는 것일까. 그것은 “生理 속에 영원히 氣絶하려”는 인간의 운명을 들여다보는 생각을 촉발한다. 질병이 없다면 인간은 없다는 인식, 폐허가 없다면 밝음도 없다는 세계의 탄생이 아닌가.

단정하자면 김면수의 지적대로 이 시는 글쓰기와 결핵/각혈의 유사성에서 시작한 것이 분명하지만, 시인의 시선은 결핵/병이 인간의 숙명이자 본질이면서 동시에 상호 주체성이라는 연동성을 가진다는 지점에 집중된다. 물론 이상은 그 절망감을 시로 바꾸면서 상처투성이 자신을 위무하고 위무해야 하는 과정을 통과한 것이다. 절망과 불안을 무람히 들여다보고 분석하고 시로 옮기면서 이상은 스스로의 심리를 인간이라는 근원에서 파악하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절망과 불안은 점차 체념과 운명으로 생성 진화하면서, 병(몸)과 정신이 서로를 타자로 인식하는 성찰의 내면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문학의 위치는 병과 정신이 분별되는 통점 너머, 재현과 재구성이 생성되는 광활한 내면 공간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질풍노도, 현실과 상상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현실은 상상보다 더 끔찍해졌고 상상은 현실의 문을 쉬이 넘나드는 중이다. 이 바이러스는 이제까지 인간이 생존했던 방식에 대하여 근원적인 의문을 야기할 섬세하고 정치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바이러스의 돌올한 화법은 낯선 질문이 아니라 인류가 이미 스스로에게 무수히 했던 질문의 반복이자 확장이다. 다만 이제까지 그 질문들을 예민한 일부만이 수용했던 내밀함이었다면 이번에는 모든 인류가 그 질문을 이해하고 답변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따라서 해답도 있을 터. 해답을 안다는 것과 해답을 실천한다는 사이의 무수한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과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인류의 답변이 어떻게 전개될지도 두고 볼 일이다.

 

 

 

 

 

송재학 | 1955년 경북 영천 출생, 경북대학교 졸업. 1986년 계간 『세계의 문학』등단. 시집『얼음시집』『살레시오네 집』『푸른빛과 싸우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기억들』『진흙얼굴』 『내간체를 얻다』『날짜들』『검은색』『슬프다 풀 끗혜 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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