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입춘이 지나면서 앞산에 안개 끼는 날이 많아졌다. 침대에서 일어나 뿌연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산자락을 보면 신비스럽고 푸근하다. 우리 인간들의 복잡한 속내를 모두 덮어버리는 모습이다. 최선의 선(善)을 놓고 경쟁하는 아름다운 다툼이 아니라, 나의 주의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상대를 괴멸시키려는, 인간들의 허물을 인자하게 덮어주려는 신의 손길 같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걷고 희뿌연 안개를 바라보면, 살면서 느꼈던 그에 대한 기억들이 마구 달려온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는, 이른 아침에 앞치마에 손 씻으며 웃고 나오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얼굴이 안개 속에서 나타나곤 했다. 새벽하늘에 별들이 돌아갈 무렵, 안개가 걷히면서 논둑 위에 송아지가 ‘음매-애’하고 어미 찾아 울 때면 고향마을은 한없이 평화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