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2

문파 2021년 겨울호

도서명 : 문파문학 62호 (2021 겨울) 저자 : 문파문인협회 편집부 정가 : 15,000원 출판사명 : 문파문학사 출간일자 : 2021-12-01 페이지 : 196쪽 ISSN : 1976-1864 주제별 분류 : 국내도서>잡지>문학/교양>문예지 [ 책 소 개 ] 『문파』는 문학의 향기를 음률에 담아 계간으로 발행하는 문예지이다. ‘참신한 문학인의 걸음’을 올곧은 푯대로 삼고 110여 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다. 이번 호에는 새로 편성된 ‘여성 작가 재조명’의 첫 번째로 한국 근현대문학의 문을 연 ‘박화성’ 소설가에 대해 서정자 선생님이 조명해 주셨다. 그간 백선욱 작가가 맡아온 ‘작가가 읽는 사진 한 장’ 코너는 사진 대신 박새로미 화가의 일러스트와 이혜미 시인의 글로 새롭게 선보인다. 지면의 제목 ..

[계간 문파문학 2021 가을호 수필마당] 심웅석-차의 정서

차(茶)의 정서 저녁 시간에는 아내와 함께 거실 의자에 앉아 TV에서 나오는 트로트를 본다. 아홉시 좀 넘으면 한 문우님이 전해주신 차를 마시는데 그 녹차, 꽃차에서 향이 나는 것을 처음 느껴본다. 전에는 향이 난다는 말만 들었지 밍밍할 뿐이었는데, 이 차는 잘 만든 고급품인가 보다. 저녁이라 커피는 피하고(녹차에도 소량의 카페인 있음), 때에 따라 생강차 대추차 레몬차 등도 마신다. 우리 정서에 맞는 트로트 노래를 들으며 차를 마시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행복한 시간을 살고 있다는 감정에 젖어 든다. 젊은 시절에는 이런 시간이 없었다. 대개는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는 일상이었고, 떠들썩한 모임에 여유 없는 인생은 술과 함께 비틀거리며 세월가는 줄 모르고 살아왔다. 이제 나이 들어 생활이 바..

[계간 문파문학 2021 가을호 수필마당] 박현섭-가을, 그리고 소리들

가을, 그리고 소리들 창틀에 매달린 귀뚜라미 소리 정겨운 백로다. 어김없이 순환하는 계절의 한 모퉁이, 저녁 안개처럼 슬그머니 가을 자락이 내려앉는다. 가을은 기억 저편으로 잊혀져간 소리들을 더 잘 기억해 내는 것 같다. 긴 가닥 거미줄처럼 오래 전 추억의 소리를 올올이 잡아 당겨준다. 세상에 존재하는 갖가지의 소리, 그중에 더욱 도드라지는 건 예전 어머니 다듬잇방망이 소리다. 어머니는 손부리가 야무진 분이었다. 가을걷이를 서두르는 아버지를 거드는 한편, 겨울 채비를 서둘러야 하는 잡다한 집안일들이 어머니 동동걸음을 잡아당기던 시절이었다. 바느질 솜씨 좋은 어머니가 지낸 섣달은 더욱더 바빴다. 잿물에 하얗게 바래진 광목 이불 홑청을 두드리던 방망이 소리에 기억이 먼발치에 서있다. 고만고만한 형제들이 한 ..

[계간 문파문학 2021 가을호 수필마당] 김민정-천국의 계단

천국의 계단 코로나의 기나긴 터널은 새봄을 보내고 부드럽게 살갗을 애무하는 초여름의 기분 좋은 설렘도 없이 조심스럽게 지나는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1차 백신 예방 접종을 하고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안면도 해안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움을 찾아 떠나 온 곳, 하얀 파도가 하얗게 웃으며 달려든다. 광활한 물결을 바라보며 말 그대로 가만히 멍을 때린다. 해안을 따라 형성된 넓은 백사장에는 캠핑과 차박을 즐기는 사람들이 물멍을 만끽하고 있다. 카페 앞마당에는 50m 길이의 ‘천국의 계단’ 이 설치되어 있어 포토존을 이루었다. 계단 아래에 삼각대를 놓고 사진을 찍으면 마치 하늘로 이어진 계단과 같은 사진이 연출된다. 실사판으로 최고의 인생 샷을 건지려는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하나같이 ..

[계간 문파문학 2021 가을호 수필마당] 손경호-부적응

부적응(不適應) ‘방콕’을 지겨워하면서도, 나들이에 선뜻 동의하지 않고 못 이긴 척 이끌려 도착한 데는 서해의 대부도였다. 하지 햇살이 여름을 맛보이기라도 하듯 따가운 날 가족 소풍이다. 이끌리어 온 중년(유엔은 66~79세의 사람을 중년이라 한다)의 남정네는 출발 때 망설이더니 바다 앞에 서서는 웃는다. 갈매기 날고, 누구든지 넉넉하게 품어 주는 바다의 멋을 상상하지 못했던가 보다. 낮의 성찬 뒤에는 나른한 시간이 따라온다. 적당한 그늘의 앉을 자리만 있어도 오수(午睡)가 제격이다. 앞장선 일행이 청년이다 보니 중년의 사정을 알아줄 리 없다. 섬 주위를 한 바퀴 도는 일은 이미 작정했던 패키지였던 모양이다. 중년 걸음으로 앞선 청년을 따라 걷기는 버겁다. 걷는 길이 그냥 길이 아니라 돌부리가 뾰족뾰족 ..

[계간 문파문학 2021 가을호 수필마당] 김선화-황톳길 잔영 2

황톳길 잔영(潺影) 2 큰일 날 일이다. 여학생이 혼자 길을 가다가 괴한을 만난다면 그 자체로 공포다. 요즘 같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학교에서부터 보안요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아이들 스스로도 미리 교육을 받아 방어력을 기른다든가 묘책을 강구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자랄 때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그저 쉬~쉬하며 키웠다. 자라면서 도움 될 만한 이야기도 애들은 들을 것 아니라는 윽박지름으로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돌려놓곤 하였다. 그러니 성교육이니 자기방어니 하는 말을 아예 알지 못하고 기껏 괴한이 나타나면 보리밭의 문둥이로나 몰아붙여 갔다. 그것부터가 우매한 가르침이었다. 아무리 콩을 팥이라고 들어도 스스로 깨우쳐 진실을 알아차릴 법하지만, 낯선 사람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방법은 재빠르게 도망..

[계간 문파문학 2021 여름호 수필마당] 정선이(박정희)-젊은 날의 추억

젊은 날의 추억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J의 귀국과 함께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의 모임을 약속한 것은 가로수 잎들이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는 지난 가을이었다. 성씨만 다를 뿐 이름도 같고 키도 비슷와한는 J 두 정희라고 불러주는 선생님들과 친구들부터 사랑과 관심 가운데 여고 시절을 보냈던 사이였다. 고향을 떠나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지내고 있던 J와 마지막 만남은 지방에 있는 약학대학 교수로 임명을 받았다는 소식을 알려온 그녀와 차 한 잔을 나누던 날이었다. 그렇게 헤어진 그녀가 약학대 학장직을 내려놓고 소록도로 내려가 10여 년을 봉사하던 그곳을 떠나게 될 때이다. 아프리카에 머물며 교육과 의료 봉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준 것은 원불교 신자인 친구들에게서였..

[계간 문파문학 2021 여름호 수필마당] 이흥수-보름달

보름달 지친 하루해가 소리 없이 사위어간다. 땅거미가 지는 저녁나절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덩달아 바쁜 마음으로 아파트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다 잠시 숨을 돌린다. 무심코 올려다 본 아파트 동과 동 사이에는 휘영청 보름달이 훤하게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얼마만인가, 전염병으로 오래 동안 갇혀 지내느라 마음 놓고 밤하늘을 볼 수 있는 여유도 없었다. 반가운 마음에 보름달을 보고 나도 모르게 가벼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60년대 중반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객지 생활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외삼촌댁에 기숙하여 주거는 안정되었지만 서투른 교내 생활과 처음 겪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학교 마지막 수업..

[계간 문파문학 2021 여름호 수필마당] 김진진-원시적 시간

원시적原始的 시간 빈센트 반 고흐나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이 즐겨 사용한 ‘코발트 블루’는 진청색이다. 고흐의 이나 마티스의 나 샤갈의 는 푸른색이 인상적이다. 신비함과 관대함으로 상징되는 이 색은 청결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차갑고 고독하며 성스럽고 아름다우나 때로는 도도하고 정열적인 느낌마저 발산한다. 1775년 루이 자크 서나드 등 과학자들의 협력으로 탄생된 안료다. 코발트는 약간 붉은빛이 감도는 강렬한 톤의 파란색 분말로 코발트라는 귀한 광석을 사용하여 만들어내는 화합물이다. 지금도 중요 생산지는 고대 페르시아로 불리던 이란이다.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는 코발트를 유액에 넣어 만든 푸른색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8세기 이후 중국으로 수입되어 청화백자 같은 고급도자기가 유럽의 명문가들에게 팔..

[계간 문파문학 2021 여름호 수필마당] 문육자-우이도의 바람

우이도의 바람 선상에서 기적처럼 만난 의 아주머니는 혀를 찼다. 식구들이 모두 목포에 살고 있으니 예약 손님이 없으면 목포에서 지내다 민박집엔 철새처럼 한 번씩 들르는 걸 알면서도 연락 없이 오다니…. 같은 배를 탔으니 망정이지 어쩔 뻔했느냐는 아주머니의 말에 바람이 꼬드겨 훌쩍 떠나왔다는 변명을 목젖으로 삼키며 웃기만 했다. 아주머니 얼굴에 반가움이 역력함을 놓치지는 않았다. 목포에서 하루에 한 번 뱃길로 4시간. 다도해 국립해상공원의 해역에 우이도는 자리 잡고 있다. 자동차는 허용되지 않고 마냥 흙길을 걸어야만 하는 곳. 섬시인 이생진 선생님을 따라 처음 발을 디딘 이후 우이도를 끊임없이 그리다 민박집 아주머니의 지청구를 들으면서까지 불쑥 찾아가곤 한다. 지난번 사흘을 계속해서 비에 젖은 채 창을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