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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마당/2021년 가을호

[계간 문파문학 2021 가을호 수필마당] 손경호-부적응

부적응(不適應)

 

 

‘방콕’을 지겨워하면서도, 나들이에 선뜻 동의하지 않고 못 이긴 척 이끌려 도착한 데는 서해의 대부도였다. 하지 햇살이 여름을 맛보이기라도 하듯 따가운 날 가족 소풍이다. 이끌리어 온 중년(유엔은 66~79세의 사람을 중년이라 한다)의 남정네는 출발 때 망설이더니 바다 앞에 서서는 웃는다. 갈매기 날고, 누구든지 넉넉하게 품어 주는 바다의 멋을 상상하지 못했던가 보다.


낮의 성찬 뒤에는 나른한 시간이 따라온다. 적당한 그늘의 앉을 자리만 있어도 오수(午睡)가 제격이다. 앞장선 일행이 청년이다 보니 중년의 사정을 알아줄 리 없다. 섬 주위를 한 바퀴 도는 일은 이미 작정했던 패키지였던 모양이다. 중년 걸음으로 앞선 청년을 따라 걷기는 버겁다. 걷는 길이 그냥 길이 아니라 돌부리가 뾰족뾰족 울퉁불퉁 칼등이어서 더하다. 거친 태풍과 파도가 헤집어 놓은 상체기의 길 아닌 길이다. 껑충 뒤뚱 걸음으로 한 발 옮기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노동이다. 지뢰밭을 건너는 인생 항로를 걷는 것 같다.


청년 추격을 포기하고 쉼터를 찾는다. 한쪽 엉덩이라도 댈 만한 넓적 돌 하나를 겨우 골라 나머지 시간을 맡기기로 한다. 해무 속의 수평선은 아득히 고요 속에 잠들어 있고, 물결은 적당히 출렁이며, 순한 바람은 더없이 상쾌하다. 엉덩이를 대자 별안간에 갈매기들이 주위를 에워싼다. 편히 쉴 형편이 못 된다. 끼륵 끼르륵, 열대여섯 마리가 맴돌다 치솟고 내려앉았다가 맴돌기를 계속한다. 영역을 침범한 적으로 보고 공격하려는 건가? 그중에 몇 놈은 아예 돌 더미에 앉아서 노려보기까지 한다. 두 시 방향의 한 놈은 손닿을 거리에서 끽끽대며 아예 문초하는 자세다. 왜 그러느냐는 눈빛을 줘도 눈만 깜빡이니 도대체 모를 일이다.

 

식물은 일곱 가지의 감각이 있다고 한다(다니엘 샤모비츠). 코가 없어도 냄새를 맡고, 혀가 없어도 맛을 보며, 뇌가 없어도 기억하는 것 같은 감각이자 지능이다. 식물보다 동물은 더 높은 감각일 것이다. 까만 눈동자, 하얀 날개, 깜찍한 목소리의 갈매기가 지금 코앞에서 끼르륵대고 있다. 갈매기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는 중년의 속내를 갈매기는 꿰고 있을지도 모른다. 참으로 맹랑하다. 침팬지의 지능지수는 120이나 되고, 까마귀는 40, 참새는 기억력이 3초 정도 간단다. 인간의 지능지수가 평균하여 130 정도는 된다지만 그걸로는 이 순간을 헤아릴 수가 없다.


갈매기들이 하나둘 제풀에 사라지고, 시간이 흘러 귀가준비를 해야 한다. 주차장 근처에 당도해보니, 건너편 백사장에 갈매기들이 떼로 몰려 야단이다. 그 한가운데에 사람이 먹이를 주며 서 있다. 옳아! 조금 전 그 갈매기들도 저기에 합류해 있나 보다. 미안한 생각이다. 손 닿을 거리에서도 갈매기의 애절한 호소를 외면하고 말았다. 물새의 먹이가 물속에만 아니라 땅 위 사람의 손에도 있다는 것을 몰랐다.


집 근처 산책길에서 만나는 들고양이들은 모두 뚱보다. 행인들이 갖다주는 먹이로 몸을 뒤룩뒤룩 불렸다. 남아도는 먹이와 낮잠으로 몸은 일고 야성은 잃었다. 숫제 들쥐 같은 먹이 사냥은 필요도, 능력도 없다. ‘쥐 잡는 고양이’는 옛말이 되었다. 한두 마리더니 이제는 일여덟 마리로 늘어 여기저기 불쑥불쑥 사람을 놀라게 한다. 동물이 귀엽기는 한데 먹이사슬을 끊어 자연을 거슬러도 되는 건지 미심쩍다. 자연과 인공 모두에서 중년이 늘 세태에 뒤처지는 것은 처세의 저지능 때문일 것이다.

 

 

 

 

손경호 |1995년 월간 『한국시』 등단. 수상록 『동초의 고백』. 수필집 『사랑할 줄 모르는 남자』 등. 중봉조헌 문학상 수상. 문파문학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계간 문예작가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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