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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시인

[이 계절의 초대시인] 나태주

 

★ 나태주 시인의 신작시 ★

*

오는 봄

 

마당을 쓸고 길을 쓸고

화단에 있는 검불을 걷어 냈다

봄님이 오시는 길을

마련해드린 것이다

 

언제든 힘들게 사고를 치면서

오시는 봄님

결코 공짜로는 오지 않고

공짜로는 또 가지 않는 봄님

 

올해도 힘들게 오셨으니

갈 때는 부디 곱게

소리 나지 않게

물러가 주시기 바랍니다.

 

 

/

 

울음 앞에

 

 

기다리마

문 열어 놓고

너를 기다리마

 

어둔 밤길

자갈밭 길

등불도 없이 떠났다가

어디라 없이

헤매고 있을 너

 

너 기다려

잠들지 않고

문고리 안으로

걸지 않고

밤을 새워 기다리마

 

다만 기다려

너 분명

돌아올 때까지 만이라도

울지 않으마

울음을 참고 있으마.

 

 

 

 

나태주 시인의 대표시

 

대숲 아래서

 

1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2

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

그슬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

밤 깊어 대숲에는 후둑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

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소리.

 

3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자죽,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

 

4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가을,

해지는 서녘구름만이 내 차지다.

동구 밖에 떠드는 애들의

소리만이 내 차지다.

또한 동구 밖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밤안개만이 내 차지다.

 

하기는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것도 아닌

이 가을,

저녁밥 일찍이 먹고

우물가에 산보 나온

달님만이 내 차지다.

물에 빠져 머리칼 헹구는

달님만이 내 차지다.

 

 

  /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

 

풀꽃

 

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2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3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 봐

참 좋아.

 

 

나태주 시인의 詩作 노트

 

짧은 시론

 

1. 사람을 살리는 시

실로 시는 매우 단출한 문장으로 어찌 보면 하찮은 문학형식일 수 있다. 외형도 왜소하고 내용도 별스럽지 않을 수 있다. 시인은 더욱 무익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러지만, 그렇지만 말이다. 가끔은 시 한 편을 읽고 삶의 의욕을 되찾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고 삶의 궤적을 바로 잡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시의 영광이요 독자의 축복이다.

<얘야, 너는 어려서부터 몸은 약했지만/ 독한 아이였다/ 네 독한 마음으로 부디 병을 이기고 나오너라/ 세상은 아직도 징글징글하도록 좋은 곳이란다>

이것은 내가 쓴 「좋은 약」이란 작품의 일부이다. 2007년, 큰 병에 걸려 중환자실에 있을 때 연로하신 아버지가 면회 오셔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쓴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세상은 아직도 징글징글하도록 좋은 곳이란다’란 문장이다. 실은 이 문장은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징글징글’이란 단어는 결코 긍정적인 경우에 쓰이는 단어가 아니고 부정적인 경우에 쓰이는 단어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 말 밖에는 다른 말을 쓸 수가 없었다.

정말로 나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순간을 견디면서 ‘징글징글하’다는 말이 그렇게도 마음의 힘이 될 수 없을 만큼 힘이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야말로 그것은 나의 마음이 아니라 나의 몸, 그러니까 전신이 기억해서 삶에 힘이 되고 용기가 되고 인내가 된다는 말일 것이다.

이것은 단어 하나나 짧은 문장에 관한 이야기지만 실지로 시는, 시를 읽는 사람만 아니라 시를 쓰는 시인에게도 많은 도움을 준다. 나는 왜 어린 시절부터 시에 매달렸고 시를 썼던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시를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였고 시를 쓰면 마음이 놓이고 편안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습니다. 시는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방법 그 자체였던 것이다.

실로 한 편의 시가 인간을 살린다. 시를 읽는 독자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시를 쓰는 시인도 살린다. 부디 당신이 어렵사리 찾아서 읽는 시가 당신을 살리고 당신의 이웃을 더불어 살릴 수 있는 묘약이 되기를 바란다.

 

2. 세 가지 갈증

인간에겐 몇 가지 갈증이 있다고 본다. 육신의 갈증과 마음의 갈증과 영혼의 갈증이 그것이다. 가장 급하고 중요한 것은 육신의 갈증이겠다. 물을 마시고 싶은 본능적이고 기본적인 갈증이다. 하지만 이 갈증은 쉽게 해결이 가능한 갈증이다.

이에 비해 마음의 갈증은 좀 복잡하다. 물을 마시면 해결되는 그런 갈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한다. 문화적 갈증이라고 보겠는데, 주로 예술적인 방법이나 문화적인 참여를 동원한다.

나만 해도 청소년 시절부터 시를 읽으면서 마음의 갈증을 해소해 왔다. 누군가 내가 느끼거나 생각했을 법한 마음을 시로 표현해 놓았을 때 그 시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대략, 김소월, 윤동주, 박목월과 같은 시인들의 작품이 나에게는 그러했다.

묘하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쪽으로 심하게 쏠리는 경향이 있다. 한두 사람이 좋다고 말을 하고 그것이 입소문이 나고 조금씩 퍼지다가 일정 수준에 오르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 시인과 그 시인의 작품에 몰린다. 이것 또한 갈증 해소의 욕구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요즘 풀꽃문학관에 사람들이 찾아오고 나의 문학 강연을 청하고 또 나의 책을 사주고 그런 일들이 모두가 이런 정신의 갈증 탓이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나는 충분히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나에게 그러는 것은 오로지 내가 좋기만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의 필요와 요구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영혼의 갈증은 종교적 갈증에 해당한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이 사마리아 지방을 방문했을 때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여인을 만나 들려준 말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물이 되리라.’

내가 쓰는 시가 그런 영혼의 갈증까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까지는 감히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마음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그런 단계의 시가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누군가에게 축복을 주고 응원이 되어주는 그런 시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나의 시는 설 땅이 마땅히 없어 보인다.

 

3. 네 말대로 되리라

예부터 시참(詩讖)이라는 말이 있었다. 시를 쓴 대로 된다는 말이고 글을 조심해서 쓰자는 말이기도 하다. 참 묘한 일이다. 자기가 글을 써 놓고 그대로 인생을 살다니! 조금은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우선 윤동주 선생의 시편들이 시참에 해당한다. 가령, 「서시」의 첫 구절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가 그러하고 「별 헤는 밤」의 마지막 구절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가 바로 그러하다.

이런 구절들은 꼭 당신의 인생과 그 이후의 모습을 그대로 예언한 듯한 글이다. 역시 요절한 기형도 시인의 시집 제목인 『입속의 검은 잎』도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가 하면 대중가요에서도 이러한 사례는 종종 본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차중락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이고 김정호의 「하얀 나비」이고 송민도의 「산장의 여인」이다. 이렇게 되면 노래 하나도 제대로 부르기 어렵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인간의 말이란 것이 예언 기능이 있고 또 미래의 삶을 구속하는 놀라운 기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례라 할 것이다. 어쨌든 글을 쓰더라도 조심해서 쓰고 좋은 내용으로 쓰고 밝은 내용으로 쓸 일이다.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인간의 말은 더할 나위가 없다.

보다 넓은 의미로 언참(言讖)이란 말도 있다. 이 말은 더욱 언어의 예언 기능을 강조한 경우이다.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말이 그대로 다음의 인생에 반영된다는 말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여기에 따라붙는 말이 저주란 말이 있다. 타인에게 불행이 일어나도록 빌고 바라는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마음은 아주 나쁜 마음이다. 있어서는 안 되는 마음이다.

바라거니와 될수록 예쁜 말을 하면서 살 일이다. 좋은 말을 하면서 살 일이다. 남을 위하는 말을 하면서 살 일이다. 그렇게 될 때 나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고 남에게도 좋은 일이 일어나고 세상의 일들도 조금씩 좋은 쪽으로 풀릴 것이란 생각이다. 네 말대로 되리라. 좋은 말이지만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나태주 시인 인터뷰

 

 

 

 

나태주 |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첫 시집 『대숲 아래서』부터 『너에게도 안녕이』까지 창작시집 44권 출간. 흙의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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