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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2021년 가을호

[계간 문파문학 2021 가을호 시마당] 김영곤-우기

우기

 


오백 일이 지나도록 이 비는 멈추지 않는다 점점 사나워진다 무대 스케줄로 꽃피우던 나의 바깥, 그 막다른 골목 귀퉁이마저 삼켰다 칼날 세운 시선이 하얗고 네모난 지붕 안쪽까지 빗발쳤다 우산처럼 뒤집히고 진흙바닥에 나뒹구는 인간의 날씨에는 언제나 고독이 멈추지 않는다 점점 불안이 격렬해진다 쓸모없어진 본업을 접고 마지막 남은 상자를 열었다 보이지 않으나 사라지지 않는 우산 하나


우산을 펼친다는 것

 

멈추게 하겠다는 것


우산도 외로워서 사람의 온기를 꽉 쥐려는가


내 손을 놓지 않는다


누군가의 우산이 된다는 것


더 이상 접혀 있지 않겠다는 것


당신만은 젖지 않게 하겠다는 것


움켜쥔 손에서 온기가 마르지 않는다

 

 

 


김영곤 | 2018년 『포지션』 등단. 논문집 『최문자 시에 나타난 여성성 연구』. 산문집 『밤이 별빛에 마음을 쬔다』. 배재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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