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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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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문파문학 2021 여름호 수필마당] 김진진-원시적 시간 원시적原始的 시간 빈센트 반 고흐나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이 즐겨 사용한 ‘코발트 블루’는 진청색이다. 고흐의 이나 마티스의 나 샤갈의 는 푸른색이 인상적이다. 신비함과 관대함으로 상징되는 이 색은 청결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차갑고 고독하며 성스럽고 아름다우나 때로는 도도하고 정열적인 느낌마저 발산한다. 1775년 루이 자크 서나드 등 과학자들의 협력으로 탄생된 안료다. 코발트는 약간 붉은빛이 감도는 강렬한 톤의 파란색 분말로 코발트라는 귀한 광석을 사용하여 만들어내는 화합물이다. 지금도 중요 생산지는 고대 페르시아로 불리던 이란이다.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는 코발트를 유액에 넣어 만든 푸른색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8세기 이후 중국으로 수입되어 청화백자 같은 고급도자기가 유럽의 명문가들에게 팔..
[계간 문파문학 2021 여름호 수필마당] 문육자-우이도의 바람 우이도의 바람 선상에서 기적처럼 만난 의 아주머니는 혀를 찼다. 식구들이 모두 목포에 살고 있으니 예약 손님이 없으면 목포에서 지내다 민박집엔 철새처럼 한 번씩 들르는 걸 알면서도 연락 없이 오다니…. 같은 배를 탔으니 망정이지 어쩔 뻔했느냐는 아주머니의 말에 바람이 꼬드겨 훌쩍 떠나왔다는 변명을 목젖으로 삼키며 웃기만 했다. 아주머니 얼굴에 반가움이 역력함을 놓치지는 않았다. 목포에서 하루에 한 번 뱃길로 4시간. 다도해 국립해상공원의 해역에 우이도는 자리 잡고 있다. 자동차는 허용되지 않고 마냥 흙길을 걸어야만 하는 곳. 섬시인 이생진 선생님을 따라 처음 발을 디딘 이후 우이도를 끊임없이 그리다 민박집 아주머니의 지청구를 들으면서까지 불쑥 찾아가곤 한다. 지난번 사흘을 계속해서 비에 젖은 채 창을 두..
[계간 문파문학 2021 여름호 수필마당] 이경선-모냥 지키기 모냥 지키기 가끔 나이를 꼽다 보면 순식간에 숫자가 불어난 것처럼 화들짝 놀라곤 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건만 조심해야 할 부분도 보태지니 서글프다는 푸념이 마른 호흡 속에 배어 나온다. 어른 노릇 하는 것이 쉬운 게 아니라는 말처럼 체면, 위신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부분도 발생하고 아랫사람에겐 표본을 보이며 행동에도 자제를 해야 잘 익은 어른이란 평가를 듣게 된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그동안의 정서나 사고가 하루아침에 어른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젊은 세대의 문화를 동경하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제 막 시니어 대열에 진입하는 ‘어쩌다 어르신’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고 외양만 늙어버린 청춘이다. 하지만 그 속내를 보여줄 방도가 희박하니 우린 어쩔 수없..
[계간 문파문학 2021 봄호 수필마당] 은영선 - 잘 먹어야 하는 것들 잘 먹어야 하는 것들 사람이 잘 먹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음식! 잘 먹어야 한다. 잘 먹는 게 뭘까? 비싼 것을 많이, 자주 먹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좋은 것을 맛있게, 감사하게 먹고 소화를 잘 시켜야 한다. 그럼 좋은 건 뭘까. 좋은 기운이 담긴 것. 엄마의 정성 같은 것? 꼭 엄마가 아니라도 누군가의 정성이 담긴 것. 씨앗을 심고 키우는 사람의 마음, 가축을 먹이고 돌보는 사람의 마음도 다 해당이 될 것이다. 현대에는 엄마가 만든 음식보다 공장에서 기계가 생산해 준 음식이 많다. 이들도 감사하게 먹는다. 거기에도 정성이 들었겠지. 나의 존재에 필요한 몸과 마음을 유지해 주는 연료이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먹은 것을 잘 흡수해 에너지로 잘 쓰이도록 스스로도 정성스레 소화해야 한다. 마음! ..
[계간 문파문학 2021 봄호 수필마당] 전영구 - 몸 따로, 마음 따로 몸 따로, 마음 따로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행동을 하고 그 행동이 본인 스스로도 이겨 낼 수 없는 부끄러움을 동반한다면 서둘러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특히 뇌리에서 일어난 일이면 지워 버리면 그만이지만 결과물이 보이는 행동이었다면 흑 역사를 지우기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사소한 일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그저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자신조차도 미워질 때 일어나는 생각과 다른 행동은 허탈함에 한동안 여린 영혼조차 상처를 받게 만들기도 한다. 사랑하는 연인의 변심으로 이별을 하게 되면 한동안은 시선 속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게 된다. 드라마에서 달달한 언어를 건네며 사랑하는 연인들이 나오는 장면을 볼 때마다 마치 못 볼 것을 본 듯한 표정으..
[계간 문파문학 2021 봄호 수필마당] 김혜숙 오늘도 살았다, 휴~ 오늘도 살았다, 휴~ 사람들을 피해 숨어들었다가 한 해가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나는 아직도 어리둥절합니다.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대역병, 코로나의 두려움은 현재도 세상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역병이 돈다는 소문을 듣고 잔뜩 움츠렸던 때를 떠올립니다. 문밖출입을 삼가고 모임마다 못 나간다고 유난을 떨었어요. 대신 정신적 여행이라도 신나게 해보자며 책나라 탐험에 나섰지요. 책 틈으로 세상을 탐구하면서 활력도 되찾은 듯했고 깨달음의 순간마다 충만감이 찾아왔습니다. 생각이 정리되는 듯하면 자연스럽게 글로 남겼지요. 이게 일석삼조네, 하며 기쁨에 들뜨기도 했어요. 그러저러 몇 달이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내 삶이라는 거대한 바다는 책을 읽고 수필을 쓰는 것만으로는 순항이 어려웠어요. 코로나19의 위세가 온 세상을..
[계간 문파문학 2021 봄호 수필마당] 안윤자 - 사대문 밖 마을 사대문 밖 마을 은평구 주민이 되었다. 서울 시내를 벗어나 생활한 지 9년 만의 귀환이다. 수십 년간을 명동과 청량리, 강남구에서 터를 잡고 살았으니 같은 서울의 하늘 밑이라 해도 이곳은 꽤나 낯설다. 애초의 숙원으로는 정년퇴직을 하면 사대문 안으로 들어가서 살아야지, 벼르고 꿈을 꾸었다. 궁성이 잔재한 옛 도성의 큰 대문 안에서 역사의 공기를 호흡하고 궐 마당을 후원 삼아 들락거리며 정온히 살고 싶었다. 한데 다시 돌아온 내 거처는 도성 밖 한양의 진산인 북한산 아랫동네다. 소망을 비켜선 시계, 사대문 바깥에서 궁을 바라기 하는 형상이라고나 할까. 요즘 나는 촌티가 폴폴 묻어있는 이 소박한 마을에 정을 붙여가는 중이다. 은평의 간이역 같은 허름한 역사에서 지하철을 타고 수 분 후면 궁궐의 대문 앞에 가..
[계간 문파문학 2021 봄호 수필마당] 김수자 - 명지바람결 같은 마음으로 명지바람결 같은 마음으로 눈이 내린다. 소담스러운 눈 송이로 설화(雪花)를 피워 준다면 그 운치 즐기는 맛도 있으련만, 짚불 불티 날리듯 눈발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각박한 세사(世事)를 닮은 건지 내리 는 눈마저 옹색하다. 마치 생각 없는 말 툭툭 던져 설화(舌禍)를 일으켜 관계를 서먹 하게 하는 일처럼. 인간의 두 얼굴 같다. 선한 얼굴과 악한 얼굴. 한없이 참을 줄 알다가도 건드리 면 폭죽처럼 터지는 시한폭탄일 때도 있다. 후한 것 같아도 쩨쩨하고 너그러우 면서도 옹졸하고 푸근하면서도 쌀쌀하다. 관계 속에 이루어지는 게 우리네 삶인 데 어떤 연유로 토라지고 삐걱대다가 급기야 미워하는 마음으로 사이가 멀어지 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앙금이 생기면 치유하기 어려워 괴롭고 힘들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