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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인의 미술 이야기] 유종인- 조선의 그림과 제화문:풍속화(上)

조선의 그림과 제화문題話文

풍속화 上

신윤복, <주유청강(舟遊淸江)>, 《혜원 전신첩》 지본담채, 28.2×35.6cm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135호

조선의 풍속화는 문인 사대부의 그림이나 전문 도화서 화원畵員속에서도 귀중한 당대적 삶의 실상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진솔한 궤적이다. 다른 모든 그림들도 그렇겠지만 특히 풍속화는 그 당대의 구체적인 진실을 진솔하게 담아 시간의 격절隔絶을 넘어 현시할 수 있는 이미지의 타임캡슐이다.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의 내밀한 속살을 들여다보고 그 현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감각하게 한다. 이는 역사적 기록이나 왜곡된 분장粉粧의 매체로부터조차 소외돼 버린 당대의 여사여사한 민초들의 굴곡진 삶의 애환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해 볼 수 있는 유의미한 회화적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 지금 여기의 삶을 입체적으로 반추하고 객관화시킬 수 있는 예전의 오늘인 셈이자, 오늘로부터 그날을 되새김질하는 실상과 진경珍景의 보고寶庫이다.

 

아, 거기 그곳에 그 시간의 곡절을 산 사람들이 있었구나, 라는 새삼스러움이 우리를 우주적인 단자單子로서의 풍속인風俗人, 숨 탄것으로서의 객관물로 오롯이 규정하는 서슬과 정서가 풍속화에는 새삼 품어져 나온다. 그런 생각의 틀에서 보자면 어느 시대이건 풍속화는 그 시대가 살아낸 타자화된 사회 공동체의 자화상에 도달한다.
풍찬노숙도 있고 농염한 풍류의 여줄가리가 있으며 성속聖俗이 갈마드는 인생 도정이 여사여사하게 담겨져 있다. 풍속화는 전문 도화서 화원이든 사대부 화가나 중인 계급의 화인畵人의 그림에도 대부분 고루 등장한다. 고아한 산수화나 그윽한 사군자나 도석인물화를 그리더라도 풍속화가 지닌 진솔한 일상의 인상과 현재적 실존의 풍물이 지닌 당대성, 그 현실감의 매력은 도저하다. 고답적인 관념이나 고아한 취향의 화재畵材들이 많지만 풍속화가 지닌 오지랖과 분별을 넘어선 당대의 풍물과 풍속이 드리운 풍속화만한 것이 없다. 거기엔 장삼이사부터 고관대작, 탈속 수행자까지 없는 사람이 없다. 사람이 살고 있었네, 이 말이 풍속화에선 여전히 현재형의 시공간으로 아우라를 풍기며 살고 있다.

 

신윤복, <주유청강(舟遊淸江)> 일부분


신윤복의 <주유청강舟遊淸江>은 곧 맑은 강에 배를 띄우고 젓대를 부는 악공樂工과 기생을 대동한 양반 사내들이 뱃놀이를 하는 화폭이다. 뱃머리 이물에 앉아 생황笙簧을 부는 기생의 입술은 습습한 강바람이 숱하게 훔치고 갔고 오른쪽으로 비딱하게 갓을 쓴 젊은 양반과 수작을 부리듯 긴 장죽의 곰방대를 문 기생은 치마폭을 말아올린 채 이물없이 속삭인다. 뱃전 중간에 앉아 청남색 치마
폭을 뱃전에 걸친 기생은 맑은 강물에 꽃잎이라도 떴는가 두 손을 강에 드리운 채 강물의 속살을 살뜰히 헤적이며 주무르는 듯도 하다. 그런 기생의 풍성하고 검은 가채머리를 바로 곁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젊은 양반도 한 팔꿈치를 뱃전에 기대 턱을 괸 채 염염한 눈길로 바라본다. 환한 물결 뱃전 위에서의 관음觀淫은 음흉하지 않고 오히려 기생의 놀이와 젊은 양반의 무심한 듯한 눈길은 음탕과 풍류의 경계를 넘나드는 감상鑑賞의 뉘앙스도 물결처럼 얼비친다.


저마다 다른 기생들의 치마저고리의 복색은 그들 나름의 취향이자 복장의 자유로움이며 그렇게 세 기생과 양반, 악공樂工과 사공 등이 어울린 뱃전은 맑은 강물에 어룽지듯 꽃무더기처럼 새뜻하니 얼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그림의 인상적인 인물은 작은 배에 사각의 차일遮日을 치고 그 아래 뒷짐을 쥔 듯하고 갓을 뒤로 비스듬히 젖힌 중후한 양반 사내이다. 젊은 양반 사내들과는 달리 수염이 청처짐하니 연치年齒가 있어 보이는 인상이다. 무엇보다 그의 도포 허리를 두른 허리띠는 가슴 앞쪽으로 흘러내린 갓끈과 직각을 이룬 채 새하얀 흰색의 띠이다. 앞서 뱃전에 턱을 괴고 기생의 물장난을 지키는 젊은 사내도 흰 띠를 둘렀다. 아마 둘은 부자지간이거나 막역한 친척 관계에 있을 것이다.


이는 상중喪中에 있는 복색의 특징으로 이 양반이 상중의 금기禁忌를 슬쩍 어기듯 벗어난 듯하다. 당시 양반은 부모가 돌아가면 삼년상三年喪을 치렀다. 물론 신분에 따라 옷을 입는 예법이 다르지만 양반의 경우 그 기간 동안 흰옷을 입었다. 화폭 속의 양반은 27개월을 지내고 아직 평상복으로 환복할 수 있는, 즉 길제吉祭를 지내기 전의 상복 차림의 실례인 경우다. 그러니 그림 속의 흰 띠를 두른 수염이 긴 양반과 뱃전에 턱을 괸 젊은 양반은 1년상인 소상小祥과 2년상인 대상大祥을 지내고 나면 27개월째에 담제禫祭를 지낸다. 그 담제를 지낸 얼마후 길한 날짜를 골라 삼년상을 다 끝냈다는 예를 지냈는데 그것이 길제吉祭라 한다. 뱃놀이에 참여한 중치막에 흰 띠를 두른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양반은 복색으로 봐 담제를 마친 차림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삼 년 탈상을 완전히 마치지 않은 와중에 누군가의 이끌림이나 부름에 마지못한 척 뱃전에 올랐을 터이다. 그 망자의 곁을 지키는 나름의 권태와 염증을 이런 일탈로 해소하고 모종의 활력을 얻어 탈상에 이르려 한지도 모른다. 죽음을 견디고 기리고 추모하는 일은 역시 삶의 수단과 결단에 의해서인지 모른다.


하여튼 남의 눈총이 어려울 수도 있을 텐데 나름의 결기로 나선 행차이니 뱃놀이와 기생들과의 향유가 끝나면 무사히 삼 년 탈상을 마칠 마음의 여력이 생길 수도 있겠다. 아무려나 생기발랄의 여흥을 즐기는 것이 시속의 금기마저 슬쩍 비켜선 당대 양반들의 욕망을 무참히 꾸짖을 수만은 없는 일탈이겠다. 이런 실상을 통해 우
리는 시간의 격절隔絶을 넘어선 당시의 진경眞境을 둘러보게 된다.


자기검열을 통해 당대의 고상한 관념에 억지로 부합되는 그림을 가려 그렸다면 우리는 혜원의 그림을 굳이 보지 않아도 된다. 혜원의 그림이 기교로 무장한 고상한 관념 산수에 한정되거나 함몰되지 않고 있음은 풍속화가 지닌 사실성과 현장성을 담보하는 화인의 진솔한 눈썰미에서 비롯된다. 풍속화는 그런 면에서 시비곡직을 가려 취사 선택의 관념을 드러내는 장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삶의 곡절을 품는데 유의미함이 있다.


혜원의 특출함은 이런 과감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당대의 현실 그 현황을 그림 속으로 끌여들여 사실감을 확보하는 데서 비롯된다. 풍속화가 적나라함이 없다면 그것은 적당한 관념화일 뿐이다. 그것은 전장에서 총칼을 들고 선봉을 나서는 장수의 무용武勇 못지 않은 당대의 예술적 자만이자 진지함이다.


그림 속의 화제畵題에는 강가의 절벽에 마치 그런 시구를 적어놓을 마련이라도 있는 것처럼 자연스레 써내렸다. 뱃놀이의 행각이 이런 분위기에서 한철의 몽매蒙昧를 선뜻 깨워가는 것만 같기도 하다.

 

신윤복, <월하정인(月下情人)>, 18세기, 지본담채, 간송미술관 소장

 

一笛晩風聽不得, 白鷗飛下浪花前
젓대소리는 늦바람으로 들을 수 없고, 흰 기러기만 꽃이 든 물결 좇아 날아든다.

 

화제를 보면 강물과 배 위에 떠돌았을 흰 기러기가 왠지 낯설기만 하다. 그림엔 물새가 몬존하게라도 들어있지도 않다. 다만 저 풍경에 드리운 정취의 전반을 얘기하고 있거나 다른 흰 물새를 드러냄에 있어 착각했을 수도 있다. 다만 화면에 가채머리를 풍성하게 올린 남색 치마를 입은 뱃전 중간의 기생이 강물에 두 손을 담그고 있다. 아마 완연하던 봄날이 가고 그 봄꽃이 흩날려 물결 위에 떨어져 부생浮生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확연하지 않으니 그럴 만한 분위기로 상상해도 그리 낯설지 않다. 허공에 나뭇가지에 매달렸을 때는 눈길로만 감촉하더니 봄날 가려고 강물 위에 떨어지니 기생 손끝에 걸리는구나. 앞서 젓대 부는 시자侍者의 대금소리가 안 들리는 것은 아마 뱃전 주변을 감도는 바람소리와 더불어 물새와 물결 소리가 더 완연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물면서 더 커진 뱃전의 소리에 갈마드는 피리소리와 기생이 부는 생황 연주의 종적은 화폭 어딘가에 몬존하게 도사리고 있을 듯하다. 없어서 없는 것이 아니라 없게 보일 따름이라는 송대宋代의 화사畵士 곽희郭熙(1023~1085)의 화론이 그림뿐만이 아니라 음률에도 가능한지 모르겠다.


화제는 마치 배가 노니는 강가 단애斷崖나 작은 절벽의 바위에 편편하고 낙락하고 써내린 것만 같다. 바위에 각자刻字를 하듯 써 내려간 화제의 흐름이 강물에 띄운 뱃전의 유희, 그 뱃놀이를 내려다보고 있다. 한 번은 우리 생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대형 크루즈 선박이 횡행하는 지구의 글로벌해진 풍류를 언뜻 넘보게도 된다. 그러나 조촐한 일엽편주, 돛도 없고 닻도 없는 거룻배를 띄워도 강은 그리고 바다는 그 범주에 한몸으로 받아들인 형국이 아닐까. 그 배에 누구를 무엇을 태우고 그윽이 즐길지가 더 관건인 것은 그게 옛일만의 풍류가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스름한 달밤에 어느 낡은 집 담장 아래 남녀가 반갑고 설레는 듯 주변을 경계하며 만나고 있다. 사각의 호롱불 단자를 든 남자는 서둘러 다른 곳으로 가자는 듯 여자를 보고 있지만 여자는 어딘가 수줍고 초조한 기색이 먼저다. 야심한 시간에 남녀가 만나는 일은 그 말보다 눈빛과 몸짓이 더 쏠쏠하고 새초롬하며 달뜨고 염염하다. 통금의 다급함에 쫓긴 것도 있지만 고대한 정인情人과의 조우가 주는 설렘과 기쁨이 이 밤의 어둠 속에도 어딘지 환한 구석이 있다. 그리하여 외간 남녀가 갖는 밀회는 곧 밀애와 짝패를 이루는 밤의 내밀한 통첩인지도 모른다.


쓰개치마를 쓴 여인은 마치 만두에 소를 넣고 다진 뒤 조물조물 주름을 잡아가며 입구를 봉하듯 제 부끄러운 낯을 가려보려 한다. 하지만 남정네에 끌리는 심사는 차마 다 가릴 수 없어 타개진 만두 입구처럼 붉은 입술과 새초롬한 눈빛을 내비치며 가만히 호응하는 기색이 완연하다. 거기에 갓을 썼지만 벼슬에 나가지 못한 선비가 입던 중치막을 입은 사내는 갓끈을 멋들어지게 내리면서 뒤끝과 앞 끝을 옥색으로 치장한 멋스런 고무신을 신었다. 그걸로 봐서 한량기가 있고 요즘으로 치면 옷맵시 좀 낸다는 스타일리스트 축에 들지도 모른다.

 

月下沈 夜三更 兩人心事 兩人知
달도 기운 밤 3경에 두 사람의 마음은 그들만이 알리라


삼경三更이면 밤 11시부터 1시 사이다. 조선 시대에는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금지가 행해져 이를 범할 때는 곤장을 맞을 만큼 엄격한 규율이 있었다. 그런 시대에 심야 삼경에 만남을 갖는 것은 그만치 절박하고 치열한 연애 행각이다. 거기에 어떤 제약이 따른다해도 그걸 능히 감내할 만한 욕망의 고조와 절절한 심정이 통했으리라. 정념에 불탄 것이든 순정한 연애의 불꽃이 튄 것이든 이들은 시대의 금기를 넘나드는 이들이니 ‘두 사람 마음은 그들만이 아는’ 그들만의 연애 리그에 돌입한 것이다. 아무도 모를 거라 믿는 저 남녀는 그러나 그들을 보는 자연물인 달과 밤의 대기와 눈을 감은 담벼락 등으로 인해서 더욱 엿보는 눈길을 이끌어낸다. 담벼락에 이들의 밀회에 대한 멘션을 달듯 써 내려간 화제는 사실 혜원의 자작시가 아니다. 선조 연간에 정승 벼슬을 지낸 김명원의 시를 빌려온 것이다.

 

窓外三更細雨時 창 밖은 야삼경 보슬비 내리는데
兩人心事兩人知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만 알리라
歡情未洽天將曉 나눈 정 미흡해서 날 먼저 새려 하니
更把羅衫問後期 나삼(羅衫)자락 부여잡고 뒷기약만 묻네


시를 쓴 김명원은 젊어서 엽색 행각에 즐겨 탐닉했다 한다. 그 호시절 그가 좋아했던 기생이 어느 양반의 후처 후살이로 들어갔단다. 그 혈기 방장한 김명원은 전직 기생을 못 잊어 그 집에 월담하다 들켜 잡히곤 하였다. 하여 큰 치도곤을 피할 수 없게 된 순간 그의 형인 김경원이 찾아와 구명에 나섰다. 그때 김경원은 이르기를 “내 아우가 기운이 호탕하고 몸가짐은 거칠어 공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아우는 평소 재주와 학문이 뛰어나 뒷날 크게 쓰일 인물입니다. 공께서는 아녀자 일로 나라의 인재를 정녕 죽이시렵니까?” 하고 간곡히 선처를 부탁하였다. 마침 아량이 있는 주인을 만났던가 관대하게 처분을 받은 김명원은 곧 풀려났다는 일화가 전한다.


젊어 여색을 밝히고 연애에 탐닉하길 잘하던 후일 정승이 될 이가 낳은 시구詩句가 혜원의 <월하정인>에 들어가니 괜히 가만
한 웃음이 나온다. 어쩌면 부적절하거나 불륜에 가까운 사회적 통념이 깃든 연애도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인생의 폭과 깊이를 넓히고 후일 인문학적 경륜을 기르는 데 얼마간 도움이 될까. 이별과 만남의 다반사茶飯事 속에 사람이 얻는 것은 무얼까. 그것은 자타自他를 불문하고 사람을 아는 것이 삶의 거의 전부를 이룰 것이다. 연애의 성사 여부를 떠나 연애를 모르고 연애를 감행하지 않고 어찌 인륜이며 인사人事를 정치精緻하게 다룰 수 있으랴. 사기나 협잡이 아니라면 연애는 심야를 봄날 꽃밭처럼 밝히리라. 그걸 누가 짓밟아 끌 수 있으랴.


여기 조선 포르노의 후기 끝간 데를 엿보는 듯한 화폭이 있다. 웃통을 벗어젖힌 젊은 선비가 오른 발목에 대님을 묶고 있다. 그와 늙은이와 젊은 처자를 둘러싸고 있는 화면 왼쪽 위아래의 색색깔 국화는 어딘가 초본草本이라기보다는 목본木本의 떨기나무만 같다. 들녘이나 산자락에서 보던 국화의 구부정하고 어딘지 휘늘어진 여유로운 자태와는 사뭇 다르다. 마치 발흥發興에 겨워 무언가를 한참 도모하려는 것도 같고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을 엿보듯 까치발을 하며 조바심을 치고 난 뒤의 헛헛함을 헤식은 미소로 내두르는 것도 같다. 그러나 초본이니 목본이니 가려 무엇하랴. 그 모두 꽃피고 지는 숨탄것인 것을 말이다.


이 그림의 큰 특징은 신윤복이 감행하는 과감한 소재적 선택의 신랄함에 있다. 단순히 중국과 일본의 춘화나 춘궁도春宮圖에 대별되는 지점이 바로 신윤복의 이런 그림에서 도드라진다. 바로 춘화春畵, 즉 포르노그래피나 춘궁도와는 다른 지점에서의 춘의도春意圖의 맥락을 혜원蕙園은 아주 적실하고 때론 은근하게 에두르고 있다.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포르노그래피를 문학적 거리로 에두르면서 완곡하게 미학적 품위로 완충하고 있는 속화俗畵로 접근하고 있는 거다.

 

신윤복(申潤福), <삼추가연(三秋佳緣)> 《혜원 전신첩》 28.2x35.6cm 간송미술관 소장


휘늘어져 땋아내린 댕기머리는 등을 보인 처자의 속내를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데, 어느 여염집 규수라기엔 그 퍼질러 앉은 품새나 정황으로 봐서 어린 기생이거나 주선에 의해 몸을 파는 계명워리나 논다니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일생일대 과감히 자신의 인연을 공공연히 찾아나서 조건을 저울질하며 결정했던 양인良人일 수도 있다. 늙은 매파媒婆일까 유곽의 포주일까 아니면 기루妓樓의 주릅이나 기생어미이지 싶다. 늙은이는 젊은 처자를 보면서도 한 손으론 술잔인가 찻잔을 접시에 바쳐 젊은 양반에 권하며 끝까지 비위를 맞추고 있다. 이른바 능란한 흥정의 제스처로 뭔가 이 사달의 결구를 지으려는 노회한 모습으로 보인다. 어떤 흥정의 결과가 나든 인연은 가을날의 발흥한 국화 무리에서 오롯하다. 아마도 젊은 양반은 앳된 기생의 소위 머리를 올려주는 초야권初夜權을 샀을 것이다. 말은 첫날밤을 산다는 말이 언뜻 그럴듯하지만 화대를 지불하는 공공연한 성매매이다.


어디로 가든 어디로 오든 가을이 와 국화는 봄날부터 키워온 쑥색의 국화잎과 줄기 가지에 환한 꽃들을 달았다. 무서리에 모두 시르죽거나 달아난 꽃들인데 오롯이 자신을 열어내는 맵차고 늡늡한 꽃이 있다니 그 곁에 인연의 물색을 살피는 사람의 일 또한 개화開花의 반열이지 싶다.


삼추가연이라는 화제畵題는 어린 동기童妓를 상대로 성매매를 한 정황을 좀 더 에둘러 그러나 좀 더 노골적으로 밝히는 시편이다. 무서리를 견디며 샛노랗게 핀 오상고절傲霜孤節의 국화의 기상은 색주가의 늙은 포주와 이미 합방을 치르고 난 뒤의 묵묵해진 젊은 남녀의 상간 매춘賣春을 에두르고 있어 어딘가 사군자四君子의 지존으로 보기엔 버성기는 듯도 하다. 어쩌면 혜원은 부러 이런 국화의 고고하고 우아한 이미지를 비틀어 부러 성매매의 공간에 에둘러 놓은 것은 아닐까. 현실과 관념의 괴리를 풍속의 시공간 속에 배치함으로써 은근히 풍자적 뉘앙스를 풍기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이왕 까발리는 김에 욕정의 적나라한 속내를 드러내는 화제는 빌려 온 시구이지만 그림의 정황을 너무나 에두르듯 적확하게 담아내는 듯하다. 그림 속의 매매춘은 그렇다치더라도 그걸 바라보는 혜원의 작의作意, 즉 사의寫意는 우변 상단에 쓴 화제로 더 노골적이고 위악적이기까지 하다.

 

秋叢繞舍似陶家
遍繞籬邊日漸斜
不是花中偏愛菊
此花開盡更無花
국화꽃 쌓인 집은 도연명이 사는가
빙 두른 울타리에 해가 기우네
꽃 중에 국화를 편애함이 아니라
이 꽃 지고 나면 다른 꽃이 없다네.


화제의 시는 당나라 원진元稹의 시 <국화菊花>를 따온 것이다. 칠언절구의 절구와 결구는 욕정의 마음을 자연물 국화를 바라는 마음을 빗대어 그려냈으니 혜원의 제 그림의 사의寫意를 드러내는데 원진의 국화에 대한 마음을 비틀어 인용하는 눈썰미가 절묘하다 하겠다. 모란과 작약과 더불어 국화는 삼가품三佳品이라 하지만 원진의 시의詩意가 혜원의 매춘 풍속도에서는 야비한 욕정과 그 간사함을 드러내는 측면으로 이끌려 사용된 측면이 있다. 굳이 원진의 시적 취지를 왜곡했다 할 수도 있으나 제 <삼추가연>의 풍속을 드러내는데 그 시적 뉘앙스를 인용하고 에둘러 패러디한 면이 없지 않다. 욕망의 본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면은 섬세한 묘사로 드러난다. 젊은 양반의 왼쪽의 뒷머리와 오른쪽 귀밑머리가 심란하게 상투 밖으로 비어져 나왔다. 어린 기생도 마찬가지다. 혜원의 배려인지 몰라도 등을 보인 동기童妓는 바닥까지 길게 내려뜨린 댕기머리가 왠지 추레한 맛이 있고 겉치마보다 월등히 비어져 나온 속치마는 그녀의 이완된 다리 자세의 탓이리라.


육체적 열락悅樂의 순간이 지나간 뒤의 심상한 뒷맛을 다시는 것은 젊은 남녀만이 아니다. 그들을 둘러싼 색색깔 떨기나무 같은 국화들이 나름의 인간 속성을 품평이라도 하는 듯 귓속말을 틀 기세다.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의 천박하거나 순정한 측면을 일일이 가리지 못할 바는 아니나 그것은 그야말로 시속時俗의 인연을 얼마나 잘 헤쳐 나가는 마음, 그 풍속인의 속종에 달려있지 않을까 싶다.


마군후馬君厚의 풍속화엔 봄날의 소박한 야외 나들이에 겹쳐진 시골 아낙네의 노동이 엿보인다. 노동이라고 하지만 정작 낙락한 봄날의 소풍이자 여흥의 기운이 자자하다. 본관이 장흥長興이고 자는 백인伯人이고 호는 양촌陽村인 마군후는 18세기에 활약한 화가다. 인물과 영모를 잘 그려 화필畵筆이 선경仙境에 이르렀다 하나 그 구체적인 행적이나 기록은 미미하고 어령칙할 따름이다. 뒤에 향나무처럼 보이는 오래된 고목은 중동의 줄기가 뚫려 앞뒤가 관통된 듯 보인다. 그 밖에도 나무 곳곳은 썩어들어가 구새먹은 듯하다. 젖먹이던 아이가 웬만큼 자라면 저 가슴이 뻥 뚫린 나무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빼며 장난을 놀 날이 있을지 모른다. 용트림하듯 비틀리듯 휘어진 줄기와 가지는 향나무의 수피樹皮가 지닌 고유한 결을 짐작케 한다.

 

마군후, <촌녀채종도(村女採種圖)> 지본담채 24.7 x 14.6cm 간송미술관 소장.


우선 마군후 자신이 그린 후에 그 서명을 한 화면 우측 하단의 관기款記는 그림을 그린 연월과 절기節氣를 간소하게 드러낸다.

 

辛亥仲春驚蟄日君厚寫
신해년 음력 2월 경칩날 군후가 그렸다.


절기상의 경칩驚蟄이면 개구리가 오랜 땅 속 칩거를 끝내고 봄의 대지로 주둥이를 내민다는 시기이다. 음력 2월의 경칩 날에 주변 나물 캐는 동네 여인네들의 한가한 봄날 노동을 채록하듯 그려냈다. 가슴을 풀어헤치고 젖을 먹이는 아낙네의 눈길은 호미질로 나물을 캐는 여인네와 한담을 나누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들밥이나 곁두리가 담긴 너른 소쿠리가 있고 나물을 캐서 담을 작고 상대적으로 운두가 높은 소쿠리가 두 개 두 아낙네 사이에 있다. 호미가 두 개지만 투잡을 할 수 없는 젖 먹이는 아낙은 호미를 심드렁히 밭가에 놓아둔 상태다. 젖을 먹이는 아낙과는 반대로 붉은 동정을 단 저고리로 가슴이 여며진 아낙은 나물 캐는 짬짬이 젖을 물린 아낙과 낙락하니 얘기를 나눈다. 겨울과는 확연히 달라진 봄의 공기와 빛살, 대기가 그들을 모종의 품으로 감싸고 있을 것이다. 자연의 품은 분별로 대상을 나누어 품지 않는다.
나물 캐는 것도 입맛을 잃은 봄날 끼니의 반찬 재료를 얻는 일로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아쉬운 것은 입의 군동내가 나도록 겨울을 견딘 여인네의 춘심을 풀어낼 가만한 수다 같은 건지도 모른다. 그걸로 심신의 환기가 이뤄진다면 그것이 더 종요로운 것일 수도 있다. 나물을 캐러 바깥으로 나온 그 자체만으로 아낙들은 작은 소풍逍風이 완연해진다. 명지바람이 불고 따뜻해진 대기는 이 아낙들에게 봄날이 보살菩薩의 가만한 오지랖을 펼쳐주는 품성을 체감하게 할 듯하다. 만물을 불러내고 키우는 그 봄의 기운 속에 부러 키우지 않고 애써 비료를 치지 않으며 조작하듯 가꾸지 않고 거둘 수 있는 산야의 나물은 그 자체로 자연이 보살이고 하느님이고 순환하는 자연의 공동체가 번져내 주는 자연물自然物의 여줄가리이다. 나물을 먹을 때 우리는 그런 보살의 현물을 먹는 격이지 싶다.


우측 상단에 쓴 화평畵評의 관기觀記는 양촌의 풍속화가 지닌 특장을 예외 없이 드러낸다.

 

春日田空 봄날 밭은 비었는데
村女採種之狀 시골 여자가 나물을 캐는 모습으로
極首幽閑 지극히 그윽하고 한가로움이 드러나는데
畵法亦正奇妙 화법 또한 바르면서 기묘하다.

 

화면의 거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커다란 무성한 나무는 화제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좀 이른 봄날의 ‘비어 있는 밭[田空]’과 대
조를 이룬다. 논밭에 작물을 파종하거나 종묘를 심기 전에 밭두렁이나 논둑에 저절로 나는 나물을 기르는 것은 자연이다. 인위적인 농경과 무위의 자연이 서로 버성기지 않고 잇닿아있음을 화폭과 화제는 에둘러 드러내준다. 특히나 양촌의 풍속화가 지닌 분위기는 그림의 주제에 맞게 지극한 그윽함과 한가로움을 드러냈다는 칭찬을 한다. 그에서 그치지 않고 마군후의 화법이 바르면서도 기묘하다는 상찬賞讚은 아마도 양촌의 그림을 잘 알고 애호하는 사람이겠고 그의 다른 그림에 기호를 가진 사람일 것이다. 낙성관지落成款識의 인장의 경우는 정확히 누구의 것인지 모른다. 세 과顆의 도장은 성명인
과 아호인, 두인頭印일 텐데 아마도 마군후 당대의 세인世人이거나 그 후대의 애호가인지 모르겠다.

 

그림의 기법이 바르기만 할 수도 있고 또 기묘한 것에만 치우칠 수도 있다. 그런데 바르면서 기묘한 것을 동시에 아우르는 화법이라고 하니 마군후에게는 쑥스러울 정도로 극찬이다. 무엇보다 이런 동양의 그림들에 문장이 들어가 어울린다는 것은 서양의 그림과는 참으로 대조적인 그림과 문자의 콜라보레이션이지 싶다. 예술과 사유思惟가 한데 노니는 이런 지경에 화제畵題는 그림의 심중을 드러내는 입이자 시경詩境으로 이끄는 견인차이지 싶다. 양촌의 <촌녀채종도村女採種圖>를 보노라면 봄이 사람을 이끌고 사람이 봄을 펼쳐놓는구나 싶다. 여지없다. 봄이 왔을 때 봄을 살지 않으면 사람이든 무엇이든 참다운 숨탄것들이 아닌 것이다.

 

(다음호에)

 

 

 

 

유종인 | 1996년 『문예중앙』 시 등단,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 시집 『숲시집』 외 몇 권, 시조집 『얼굴을 더듬다』 산문집 『염전』 『조선의 그림과 마음의 앙상블』 등. 지훈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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