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안에는 저탄소 사과가 자란다
내 몸 안에는 거칠어지려는 나와 부드러워지려는 나가 있다 거칠산역 새벽에 가면 거칠어진 나가 도착해있다 왼손에는 길든 가죽가방을 들고 오른손은 저탄소 사과를 먹고 있다 새벽의 바다는 안개 속에 휘감겨있고 거칠산역 기차는 수평선을 거침없이 달린다 거칠어진 나의 손바닥에는 저탄소 사과의 앙상한 뼈다귀가 놓여있다 움켜쥐어도 한 방울의 즙조차 나오지 않는 말라비틀어진 저탄소 사과의 젖꼭지를 바다를 향해 던진다 투수가 된 거칠산역은 부드러운 나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런가 진정 그런가 그렇다 그렇다고 하자 부드러운 나가 두릅역에 내린다 연보랏빛 치렁치렁한 길고 긴 머리카락 위로 해수면이 높아진 봄을 이고 왔다 한 달 내내 내린 함박눈으로 사방은 백야처럼 잠들지 못하고 부드러운 나는 6.25mm 높아진 해수면으로 찰랑찰랑 봄옷을 지어 입은 해실해실 웃는 듯 우는 3도 화상 입은 뜨거운 봄을 데리고 왔다 지금은 실제 기후 상황이다 수척해진 북극곰이 빙하에 불어터진 외마디 비명을 질러댔다
송 진 | 1999년 『다층』 등단. 시집 『지옥에 다녀오다』 『미장센』 『복숭앗빛 복숭아』 등. 계간 『사이펀』 부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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