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당/2021년 여름호

[계간 문파문학 2021 여름호 시마당] 조윤주-지구라트

알 수 없는 사용자 2021. 9. 1. 17:04

지구라트

 


그의 손바닥엔 살을 양생養生해 지은 성전聖殿이 있다 손가락을 접었다 펼친 숫자만큼 쌓인 고난의 집 90도로 땅에 닿을 듯 몸을 숙여야만 피어나는,


살의 꽃 약지・중지・집게손가락의 하중을 받치고 있다 무시와 냉대, 긴 여정을 돌아와 칼을 들이대도 꿈쩍 않고 도려내도
통증 없는 지구라트*다


폐지廢紙를 싣고 사계절을 굴리는 그는
날마다 기도를 쌓는다
몇 해의 밤과 낮이 계절을 바꿔도
기도의 응답은 갈비뼈 아래서 칩거 중
닳고 닳은 지문 속에서 길을 잃은 지 오래다


정수리에 흘러내린 땀방울 성서처럼 이고
지그재그로 걷는 곡절의 통로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닥을 끌고 오르막길을 넘는다


그가 리어카를 세우고
잠시 흙 주름의 얼굴을 닦는 시간
나무들은 맑은 빛을 되새김질해 그늘을 펼친다


부드러운 방향으로 뻗어가는 굳은살의 뿌리


깊다

 

*지구라트(ziggurat): 다른 말로 성탑(聖塔), 단탑(段塔)이라고도 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각지에서 발견되는 건축물로 일종의 신전이었다.

 

 

 

 

조윤주 | 1999년 『예술세계』 등단. 시집 『나에게 시가 되어 오는 사람이 있다』 『미완성의 노래가 그녀를 일으켜 세운다』 『새살 돋는 사랑의 성』 등. 한강문학 이사, 서울오늘신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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