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당/2021년 여름호

[계간 문파문학 2021 여름호 시마당] 박은정-부두인형

알 수 없는 사용자 2021. 9. 1. 18:19

부두인형

 


욕조에 인형을 빠트린다

 

목을 조르자 몸뚱이가 튕겨 올라온다

 

아직은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게 용서의 이유라도 될 것처럼


감자튀김을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면


술잔은 이유 없이 찰랑거렸고


나는 어느새 우리의 자리에 앉았다


이 환란의 시대에 태어난 걸 축하해, 한 손에는


나를 닮은 부두인형을 안고


촛농이 떨어진 케이크를 자르면


누군가 나의 얼굴에 긴 바늘을 꽂는다


아직은 살아서 행복한 거지?


나의 멱살을 잡던 눈은 뜨거웠고


아프지 않아도 아팠던 날들과


알고 싶지 않아도 모르는 미래가 지겨웠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끝이 나는 걸까


물 위로 떠오르는 인형이 있다


나를 찌르던 손이 나를 건져 올린

 

아직은 죽지 마, 네 마음이 버둥거리잖아


몸속의 피가 다 빠져 나간 모습으로


매일을 선물 받는 기분을 네게 말할 수 있을까


신의 불행을 호주머니에 차곡차곡 쌓으며


누더기처럼 살아 암소와 송아지를 낳고


팔이 꺾이고 목이 꺾이도록 울어대는 새끼를


다시 세상에 내놓고 생일을 챙겨주는 일


욕조에 물이 다 빠져나가도록


이 집에는 달이 뜨지 않는다


태어나자마자 입에 거품을 물고 울었으니


두 발을 뻗으면 세계의 끝이 맞닿았으니


누군가 태어난 날을 세며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갈기갈기 찢어진 숨 하나가


살아서, 나를 죽였다

 

 

 

 

박은정 | 2011년 『시인세계』 등단. 시집 『아무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 『밤과 꿈의 뉘앙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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