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당/2020년 여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여름호 시마당] 김선진 - 아직도 내가 못가는 까닭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 12. 23. 18:27

아직도 내가 못가는 까닭

 

 

내가 믿는 건 당신이 알겠기에

귀엣말이 아니래도 짐작하실 테죠

 

날이면 날마다

감춰도 비집고 나오는 하얀 서리로

엮어져 내리는 기다림

어릴 적 소꿉놀이 헝겊 조각보

정직한 그리움의 깃발 만들어

세상사람 모르는 무인도로

고동만 불면 떠나갑니다

그러나 아직도 여물지 않아

사나운 짐승울음 바다 다스릴 길 없어

돛대도 아니 달고

미처 노도 내리질 못해요

 

내가 믿는 건 당신이 알겠기에

귀엣말이 아니래도 기다리실 테죠

 

아직도 내가 못 가는 까닭을.

 

 

 

 

 

김선진 | 1989년 『시문학』 등단. 시집 『끈끈한 손잡이로 묶어주는 고리는』 『촛농의 두께만큼』 『숲이 만난 세상』. 시선집 『마음은 손바닥이다』. 산문집 『소리치는 나무』. 한국현대시인상, 이화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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