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당/2020년 여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여름호 시마당] 박라연 - 어느 저녁에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 12. 23. 18:29

어느 저녁에

 

 

새봄이 저물어 가는데

 

지난 가을의

국화시체들을 수습하는 시간

 

방치된 국화들의 뼈아픈 순간들을

화장시키는데

 

내 뼈아픈 시간들이 염치 좋게

타들어갑니다.

 

타닥타닥

떠도는 세상의 뼈들이 함께 타들어 가는데

어머니들의 향기가 낭자합니다

 

바람이

나의 후회를

멀리 아득하게 데려갑니다.

 

땅의 시간 속에서

어서

 

나오겠다, 와

끝까지 서 있어주겠다, 속에서

 

옥신각신하던 오늘의 해는

저물어, 저물어

 

내 인생도 저물어, 저물어

 

가물가물

 

그저 아름답습니다

 

 

 

 

 

박라연(朴蓏娟) |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빛의 사서함』 『노랑나비로 번지는 오후』 『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 등. 2008년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2010년 박두진 문학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문학부문 대통령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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