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당/2020년 여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여름호 시마당] 함성호 - 물소리, 바람소리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 12. 23. 18:31

물소리, 바람소리

― 소쇄원(瀟灑園)에서

 

 

서로 폐 끼치며 사는 거다, 이 화상아

 

자미탄이

백일홍의 그림자로

여인의 붉은 치마처럼 너울거릴 때

어느 저녁은 올 것이다

그 저녁이 오면

모두의 선의를 뿌리치고 간 너도

어느 강변쯤에는 가 있겠지

 

나는 제월당에 누워 쥘부채를 멈추고

왼쪽 귀에는 계곡의 물소리를 담고

오른쪽 귀로 대숲의 바람소리를 흘린다

 

이 원림은 은근히 관능적이다

오곡문 담장 위를 타고 오르는 해찰 맞은 바람처럼

생은 통째로 개 혓바닥 같이 숨찬 것이었느냐?

나는 모르겠다

소쇄/소쇄/소쇄/소쇄/소쇄

춘삼월의 바람이 대숲을 쳐

靑竹春光에 날리는 저 대이파리들의

장하게 잎 부비는 소리를 듣는다

아아 너는 어느 개여울에 앉아 울고 있는 것은 아니냐,

 

우리가 지나온 그 좋았던 날들이

먼 수평면상의 궤적으로

아찔한 부표처럼 떠오를 때

게으른 수로를 따라

너에게 닿을

물소리 바람소리

소쇄/소쇄/소쇄/소쇄/소쇄

―차가와요, 차가와요

 

달빛은 광풍각의 지붕에서 머물고

물빛은 오동나무 그늘에서 반짝이네

계곡을 타고 오르는 물소리 바람소리

응? 애양단에는 왠 사슴이,

 

그리움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함성호 | 1990년 『문학과 사회』 등단. 시집 『56억 7천 만 년의 고독』 『성타즈마할』 『너무 아름다운 병』 등. 현대시 작품상, 공간건축평론 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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