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당/2020년 여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여름호 시마당] 김규은 - 백차를 기뻐한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 12. 24. 10:38

백차를 기뻐한다  

 

 

찻잎에 빗방울 소리

대숲 흔드는 바람에 밀리듯

묻지도 않고 뛰어든 쭉나무 집

할머니 웃으신다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건네 주시는 수건

햇살내 나는 듯 고실고실 한데

닳아 뭉뚱한 손 마디가 눈에 밟혀 마음 쓰인다

일상인 듯 능숙히 따루시는 차 한 보시기

맑고 순한 백차(白茶)다

기뻤다

덖고 비비지 않아도 그윽한 향미

잎으로 피기 전 털복숭이 여린 속속잎을

저리 무뎌진 손끝으로 어찌 거두셨는지

자꾸 눈길이 가는데

훈김 나는 다향에 끌려 시린 눈 고쳐 웃으며

웃음 웃는 할머니의 손을 붙안고

순한 순수에 내가 잡힌다

덖고 비비지 않아도 그윽한 다향 백차를 기뻐하며

 

 

 

 

 

김규은 |1991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냉과리의 노래』등.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미래시시인회 회장, KBS 아나운서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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