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차를 기뻐한다
찻잎에 빗방울 소리
대숲 흔드는 바람에 밀리듯
묻지도 않고 뛰어든 쭉나무 집
할머니 웃으신다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건네 주시는 수건
햇살내 나는 듯 고실고실 한데
닳아 뭉뚱한 손 마디가 눈에 밟혀 마음 쓰인다
일상인 듯 능숙히 따루시는 차 한 보시기
맑고 순한 백차(白茶)다
기뻤다
덖고 비비지 않아도 그윽한 향미
잎으로 피기 전 털복숭이 여린 속속잎을
저리 무뎌진 손끝으로 어찌 거두셨는지
자꾸 눈길이 가는데
훈김 나는 다향에 끌려 시린 눈 고쳐 웃으며
웃음 웃는 할머니의 손을 붙안고
순한 순수에 내가 잡힌다
덖고 비비지 않아도 그윽한 다향 백차를 기뻐하며
김규은 |1991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냉과리의 노래』등.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미래시시인회 회장, KBS 아나운서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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