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진이에 대한 고정관념
꿈에 다시 두진이가 찾아와서 초인종을 눌렀음
집을 어떻게 알았냐고 나는 화를 내고 있었음
두진이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초인종을 또 눌렀음
그러니까 이 장면은 계속 되풀이되는 내 꿈의 이야기임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았던 아이들은 하나둘씩 개명을 했었음
건호로 개명한 알찬이 별명은 알찬 제비
주영이로 개명한 신나라 별명은 아이 신나라
문교로 개명한 정두진 별명은 두부감빠였음
이름만으로 잘 자라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친구들은
개명을 하고 나서도 꼭 한 가지씩 별명을 가지고 살았음
이름이 여럿이라는 건 굉장한 인기의 척도이자, 노력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분명히 각인될 수 있는 냉정이었음
건호가 된 뚱뚱이 알찬이는 이제 건빵이 되고
주영이가 된 큰 바위 얼굴 신나라는 부엉이가 되고
지적장애 두진이는 우리들의 종교 정문교가 되었음
누군가 나한테 꼭 종교를 물어봤으면 좋겠다는 날들이 지속되었음
두진이한테 물감을 먹이거나
모래로 머리를 감으라고 시킨 녀석들은
대부분 인문계로 진학했고 좋은 대학에 갔고
여전히 잘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옴
문교가 된 두진이는 공고로 진학했는데 당시 공고도 떨어진 아이들은
정문교를 믿지 않아서 떨어진 거라 소문이 파다했음
공고에 가서도 두진이는 졸업 앨범 주소록을 보고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놀자고 집에 찾아왔었는데
그때도 나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편지를 받았던 사실조차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음
학교에 다니지 않았던 나는, 학교를 다니지 않았던 사실보다
두진이가 나를 안다고 하는 사실이 더 부끄러웠음
건빵은 건빵대로 부엉이는 부엉이대로
알찬 제비와 아이 신나라는 저마다 나름대로, 그들대로
다 찾아가고 싶은 친구나 이름들이 있겠지만
왜 내 꿈에는 얘네들은 없고 두진이만 있는 걸까 궁금했음
문교가 된 두진이가 끈질기게 꿈에 찾아옴
꿈에 찾아와서 자꾸 문을 열어달라고 함
어디 가자는 건지, 같이 놀자는 건지 잘 모르겠음
여전히 자라지 않는 두진이와 다 자란 내가 너무 달라서
꿈에서도 두진이를 아직 잘 모르겠음
내가 잘살고 있는 건지 여전히 잘 모르겠음
초인종을 눌렀을 때 두진이가 문을 열어주는 꿈은
언제쯤 꿀 수 있을까 정말 모르겠음
박성준 | 2009년 『문학과 사회』 시, 2013년 경향신문 평론 등단. 시집 『몰아 쓴 일기』 『잘 모르는 사이』. 2015년 박인환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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