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무늬
열차 안, 뱀가죽 백을 든 여인이 옆에 앉는다
꿈틀거리는 무늬,
소름이 내 손등을 타고 오른다
사람 키를 훌쩍 뛰어넘는 길이,
자바섬의 비단뱀은 비단 같은 삶을 꿈꾸는 사람들의 밥이다
화려한 무늬가 천적을 부른다
훈장처럼 뱀 이빨자국을 팔뚝에 새긴 땅꾼들은
잡뱀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위장술과 나무 타기에 능숙한 비단뱀, 나무 위로 몸을 숨겨도
예민한 귀를 가진 그들
잠잘 때도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머리를 둔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풀잎이 흔들리는 곳으로 달려가 맨손으로 대
물을 덮친다
엎치락뒤치락
터질 듯 조여 오는 죽음의 공포
숨이 가쁘고 서늘한 피가 온몸으로 퍼져나가도
밥이 새지 않게 조심조심
비늘 하나라도 다치면 안 된다
결국, 머리를 잡은 쪽이 승자다
힘이 빠지기를 기다리던 마대가 놈을 한 번에 삼킨다
뭉친 비명을 풀기 위해 뱀의 아가리를 벌리고 고무호스가 물을 붓는다
물처럼 부드러워진 가죽,
악어나 돼지를 통째로 삼키던 밀림의 포식자도 마지막 식사는 물이다
뱀 한 마리가 여자를 휘감고 구불구불 터널 속으로 기어간다
이해원 | 201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일곱 명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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