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시인의 묘(墓)
영혼은 양지바른 산자락에 앉았네. 고명 시인들의 시말을 아
무리 뒤적여도 시알이 떠오르지 않았어. 무명이면 어떤가 영혼
에서 깨끗한 가닥으로 뽑아 집을 지었으면 그만이지. 이 정갈한
집에 앉아 봄을 잃은 설움에 잠겨 있으니, 노란 산수유가 귀를
쫑긋 옆에 매화도 방긋 웃고 앞쪽 이팝나무 마른가지에 앉은 까
치도 봄소식을 전해 주네. 파란 하늘에서 낮달도 손 흔들어 주
니 서러운 마음 구름처럼 흩어지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내 집에 좀 쉬어가라 청하지
않아도 외롭지 않아. 바람 부는 벌판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의연
히 내 길을 걸어오지 않았나. 그대 먼 길을 자주 찾아올 필요 없
어 어둠이 내리면 하늘의 별을 통해 우리 안부를 전하지. 조용
히 옆에 앉은 할미꽃에게 내 시를 들려줘야지. 이제 곧 개나리
영산홍도 찾아올 테니 이 영혼 춥지는 않을 거야.
낙엽 지고 눈 내리고 세월이 가면,
풀벌레 소리만 가득할 뿐 모두 잊히리
이승의 인연들도 모두 떠날 것이니
심웅석 | 2016년 계간 『문파』 등단. 시집 『시집을 내다』 『달과 눈동자』. 수필집 『길 위에 길』 『친구를 찾아
서』 등. 2017년 용인시창작지원금 수혜. 2020년 문파문학상 수상. 한국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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