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교
보라가 노랑으로 변한 걸까
노랑을 보라로 봤던 걸까
한때
내 눈엔 오직 보라뿐
네 혈관에 흐르는 파랑과 빨강까진 알아채지 못했던 것
환한 웃음에 감춰진 질투를 깜깜 몰랐던 것
맞지도 않은 꽃말 따윈 믿지 않았어야 했다
짙은 향기에 숨이 막혔다
궁금해 한 적 없었지만
파종도 않고 물 한번 안 주었지만
꽃밭 한 구석에 핀
애기팬지꽃 한 송이
노랑은 보라만 알았거나
보라는 노랑을 몰랐거나
반은 보라, 반은 노랑
극과 극의 개성을 뛰어넘은
자칫 촌스러울 수도 있는 두 가지 색의 자연스런 조합
작은 꽃잎에 사이좋게 엉덩이를 들이민
같음과 다름
관심과 무관심
우린 서로 동색同色이라 착각하고 동석同席했던 걸까
질긴 엉덩이만큼 펑퍼짐해진 실망과 잦은 오해는
한 방석에 도저히 같이 앉아 있을 수 없게 됐고
불가근불가원,
애초
노랑은 노랑을 몰랐거나
보라는 보라만 알았거나
애기팬지꽃은 그냥 예쁘기만 한데
이인원 | 1992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빨간 것은 사과』 『궁금함의 정량』 『그래도 분홍색으로 질문했다』. 2007년 현대시학 작품상 수상.
반응형
'시마당 > 2021년 여름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간 문파문학 2021 여름호 시마당] 이대흠-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0) | 2021.09.01 |
---|---|
[계간 문파문학 2021 여름호 시마당] 이정록-첫날 (0) | 2021.09.01 |
[계간 문파문학 2021 여름호 시마당] 이경림-여기 (0) | 2021.09.01 |
[계간 문파문학 2021 여름호 시마당] 송재학-풀쐐기에 쏘였을 때의 민간요법 (0) | 2021.09.01 |
[계간 문파문학 2021 여름호 시마당] 장원상-다행입니다 (0) | 2021.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