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당/2021년 여름호

[계간 문파문학 2021 여름호 시마당] 이정록-첫날

알 수 없는 사용자 2021. 9. 1. 16:37

첫날

 


타이어에 낀 돌
세 개를 빼냈습니다
너무 힘을 주는 바람에
하나는 멀리 날아갔습니다
반쯤 닳아버린 잔돌 두 개를
민들레 꽃그늘에 가만 내려놓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끌려 왔겠지요
돌의 배를 맞대어 주니 기어코 만난 연애 같습니다
바퀴가 생기기 전부터 오늘이 준비됐던 걸 알았다면
부서지고 망가지는 통한의 길을 고마워했을까요
오늘은 타이어에 낀 잔돌을 뽑아냈습니다
하지만 풀밭 어딘가로 날아간 나를
찾지 않기로 합니다 오래된 나를 퉁겨낸
작디작은 내가 홀로 맞는 첫날이니까요
몸속 깊은 곳에 박혀 있는 상처투성이 돌을 빼내어
풀밭에 내려놓을 때마다 나는
첫사랑을 발명하니까요

 

 

 

 

이정록 |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동심언어사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정말』 등. 박재삼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김수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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