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이불을 덮고 주무세요
누군가 앉았다 일어난 자리
머플러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지나치게 움츠러든 사람
누군가 그를 두고 가버린 것이었다
어서 오세요
사소한 인사라도 듣고 싶은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아
커피숍 닫힌 문을 비집고 들어온 지난 계절의 잎새
어떤 말이라도 필요한 것이었다
내일 전국 흐리고 쌀쌀 밤부터 기온 뚝, 일기예보 문자마저 한참을 들여다보는
언제부턴가
눈 닿는 곳마다 비가 듣는 것이었다
그 비를 다 맞는 것이었다
저 테이블 저 의자 저 쓰레기통
찌그러진
찌그러진
여기에 버려주세요
잇자국이 선명한 컵이나 식어버린 커피의 안부를 염려하는
그냥 그런
감사합니다
작은 우연이라도 필요한 것이었다
살아 있다는 사실, 가끔은 그 사실을 들키고 싶어
바닥에 맥없이 주저앉은 머플러
그를 일으켜 급히 카운터 쪽으로 향하는 누군가
안녕히 가세요
사람이었다
박소란 | 2009년 『문학수첩』 등단.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 『한 사람의 닫힌 문』. 노작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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