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진 로드
부케를 쥔 손이 떨린다. 웨딩 마치에 따라 보폭을 맞추고 눈인사를 하고 하나를 맹세한다. 폭죽이 터지고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인다. 박수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고개를 기울여 달아오른 입술을 내민다. 뱀의 혀끝처럼 갈라진 길들이 꿈틀거린다. 온몸이 흡반이 되어 서로를 끌어당긴다. 한 몸으로 문드러지는 끈끈한 과육이 된다. 썩어가는 과육에서 풍기는 달큰한 향내. 잘게 잘린 색종이가 먼지처럼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샹들리에 장식이 물방울처럼 번져나간다. 박수 소리에 갇힌 채 당신과 나는 납작한 액자가 된다
한세정 | 2008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입술의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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