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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의 초대시인] 정끝별

★ 정끝별 시인의 신작시 ★ 갈매기의 꿈 To the real Jonathan Livingston Seagull, who lives within us all 하얀 새 한 마리가 긴 날개를 펴고 동쪽을 향해 날고 있었어 흰 날개를 받쳐주는 저 파랑은 바다였을까 하늘이었을까 오른쪽 날개에는 세로로 쓰는 갈매기의 꿈이 왼쪽 날개에는 가로로 쓰는 Jonathan Livingston Seagull a story가 펼쳐졌다가 판권에서 만났어 갈매기의 꿈 (값 500원) ∼∼∼∼∼∼∼∼∼∼∼∼∼∼∼∼∼∼∼∼∼∼∼ 西紀 1974年 4月 15日 印刷 西紀 1974年 4月 25日 發行 著 者 리 처 드 바 크 譯 者 李 相 吉 발행인 方 義 煥 발행처 世 宗 閣 서울특별시 관악구 본동 127 출판등록 1962.11.3.(..

초대시인 2020.12.29

[이 계절의 초대시인] 나태주

★ 나태주 시인의 신작시 ★ * 오는 봄 마당을 쓸고 길을 쓸고 화단에 있는 검불을 걷어 냈다 봄님이 오시는 길을 마련해드린 것이다 언제든 힘들게 사고를 치면서 오시는 봄님 결코 공짜로는 오지 않고 공짜로는 또 가지 않는 봄님 올해도 힘들게 오셨으니 갈 때는 부디 곱게 소리 나지 않게 물러가 주시기 바랍니다. / 울음 앞에 기다리마 문 열어 놓고 너를 기다리마 어둔 밤길 자갈밭 길 등불도 없이 떠났다가 어디라 없이 헤매고 있을 너 너 기다려 잠들지 않고 문고리 안으로 걸지 않고 밤을 새워 기다리마 다만 기다려 너 분명 돌아올 때까지 만이라도 울지 않으마 울음을 참고 있으마. ★ 나태주 시인의 대표시 ★ 대숲 아래서 1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 내 마음은 ..

초대시인 2020.12.29

[계간 문파문학 2020 겨울호 기획특집] 김효숙 - 호모필로포엠이 들려주는 별 이야기

호모필로포엠이 들려주는 별 이야기 피타고라스에게 별은 세계의 실재를 직관하는 매체였다. 루카치의 별은 신화 세계의 총체성 안에서, 칸트의 별은 양심의 지도 위에서, 윤동주의 별은 초자아의 자리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다. 도시에서는 이제 전류를 셧다운 하지 않는 한 별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동안 인류가 망각해 온 불길한 문명의 속성을 밤하늘이 증명한다. 인류가 꿈꾸던 신비한 우주가 과학 문명의 종착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곳에서 오는 빛을 볼 수 없어진 하늘을 향해 인류는 점점 머리를 들 이유를 잃어가고 있다. 그럴지라도 시인들은 별을 떠나지 않고 시를 쓴다. 상상력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에도 시는 과학처럼 우주까지 가 닿는다. 과학기술이 인류를 구원하리라는 교만한 믿음이 시인에게 없는 것은, 그들이 ..

[계간 문파문학 2020 겨울호 기획특집] 박용하 - 인간은 아무리 멀리 가도

인간은 아무리 멀리 가도 별은 멀고 인간은 가엷다 별은 깊고 가 닿을 수 없는 높이에서 빛난다 높은 것은 깊은 것 손 댈 수 없이 높은 것은 입 댈 수 없이 깊은 것 별은 너무 깊어 겸손을 모르고 별은 너무 높아 부끄러움을 모르고 인간은 여전히 오만하다 많이 건방지다 그가 사는 행성에서 문제는 인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문제적 동물은 인간이라는 동물 그럼에도 우리는 해의 자식들 달의 후손들 별의 조상들 우주 먼지의 후예들 해의 눈부신 시선과 달의 그윽한 호흡과 별의 눈부시지 않은 서광과 함께 한 없이 높은 것은 원 없이 깊은 것 별은 너무 멀고 인간은 너무 가깝다 별은 깊은 곳을 넘어 깊고 나는 곁에 있는 인간에게도 닿을 수 없고 인간은 아무리 멀리 날아도 자신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벗어나지 못 한다 ..

[계간 문파문학 2020 겨울호 수필마당] 심웅석 - 안개

안개 입춘이 지나면서 앞산에 안개 끼는 날이 많아졌다. 침대에서 일어나 뿌연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산자락을 보면 신비스럽고 푸근하다. 우리 인간들의 복잡한 속내를 모두 덮어버리는 모습이다. 최선의 선(善)을 놓고 경쟁하는 아름다운 다툼이 아니라, 나의 주의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상대를 괴멸시키려는, 인간들의 허물을 인자하게 덮어주려는 신의 손길 같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걷고 희뿌연 안개를 바라보면, 살면서 느꼈던 그에 대한 기억들이 마구 달려온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는, 이른 아침에 앞치마에 손 씻으며 웃고 나오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얼굴이 안개 속에서 나타나곤 했다. 새벽하늘에 별들이 돌아갈 무렵, 안개가 걷히면서 논둑 위에 송아지가 ‘음매-애’하고 어미 찾아 울 때면 고향마을은 한없이 평화스러..

[계간 문파문학 2020 겨울호 수필마당] 손거울 - 짱돌

짱돌 강물은 아침 안개를 품은 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강 건너에는 그들의 아지트인 빈집이 내 시야에 들어온다, 나도 모르게 움찔한다. 나는 시간이 없었다. 결전의 시간이다. 내가 이 학교를 다니느냐 아니면 다시 목동으로 돌아가느냐 하는 기로에 서있다. 어떻게 해서 얻은 기회인데 학업의 중단은 없다. 떨리는 입술을 깨문다. 내주먹보다 큰 반들거리는 짱돌하나를 가방 도시락 케이스 옆에 집어넣는다. 물론 젊은 선생님의 후원이 힘이 된다. 혼자지만 혼자는 아니다. “계율아 니가 그냥 지나가면 너의 후배들도 당한다. 단단히 각오해라 내가 있다;” 하신 말씀에 힘을 얻는다. 아지트 입구 쪽을 조심스럽게 지나는데 아니나 다를까 담배를 꼬나물고 나타난 셋 놈이다. 나보다는 몇 살씩 더 먹어 보인다. “야 이 촌놈 어..

[계간 문파문학 2020 겨울호 수필마당] 박현섭 - 접목

접목 올해처럼 숫자에 민감해 본 적이 없다.‘코로나바이러스전염병 확진자’라는 듣도 보도 못하던 숫자가 불쑥불쑥 튀어 오르는 두더지 게임처럼 온 세상사람들 정신 줄을 쥐고 흔들어댄다. 하루하루 요동을 치는 숫자에 눈을 떼지 못한 채 가슴 조리는 불안이 목울대를 짓누르는 사이, 시간은 어이없이 반년을 훌쩍 넘겨 가을길목의 착잡한 일상으로 이어진다. 계절모퉁이를 돌아들며 숨죽이는 신음들이 안팎으로 낭자하다. 이런 나날이 계속되리라 아무도 예측할 수 없던 지난봄은 우리에게도 더없이 잔인한 날이었다. 제대로 드나들 수 없는 중환자실에 갖가지 기구들을 주렁주렁 매단 채 맞닥뜨린 남편의 모습은 처참했다. 얼결에 지끈 감았던 눈을 뜨며 그에게 불쑥 튀어나온 말이 “고맙습니다”였다. 다른 어떤 말로는 눈을 맞출 수 없는..

[계간 문파문학 2020 겨울호 수필마당] 곽영호 - 두부 한 모 사오세요

두부 한 모 사오세요 지는 해도 피곤한가보다. 게으름뱅이 하품하듯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모두가 하루를 내려놓으려는 듯 몸을 눕힌다. 내 그림자도 늘어져 휘청거린다. 흐느적거리는 것은 깔끔한 모습이 아니다. 하루를 마감하는 그림자를 기다랗게 느려 치렁거리는 것은 온전하게 마무리를 하지 못한 미완의 모습이다. 찜찜한 기분으로 터덜거릴 때 전화벨이 울린다. 나의 동선을 꿰뚫고 있는 아내다. “두부 한 모 사오세요. 나 두부 살줄 모르는데. 두부 못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부침 할 거라고 하면 알아서 줘.” 일갈한다. 농부가 갈아엎어 놓은 흙속에서 굼벵이 제집 찾아가듯 두부 집을 더듬는다. 저녁시장거리에는 여인들 발걸음이 줄을 잇는다. 광고문구가 선명한 바퀴달린 가방을 모두가 끌고 다닌다. 어쩌다가 저녁 ..

[계간 문파문학 2020 겨울호 수필마당] 김숙경 - 직진이 아닌 좌회전

직진이 아닌 좌회전 봄날 분주함을 보태는 일이 생겼다. 가게 임대 만기에 맞춰 월 40프로 인상된 점포에서 굳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 이전해야 했다. 추운 날씨를 감안해 봄 까지 연장해 주겠다는 임대인의 선심보다 먼저 봄이 급속도로 가까운 곳에 와 있다. 봄이 오려면 아직은 한참이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발등에 꽃 같은 불이 붙었다. 가진 자의 횡포라고 생각하면 그뿐이겠지만 그들도 나름 사정이 있을 거라는 이유도 헤아려본다. 없는 자의 서러움이 깊으면 지금보다 더 값싼 곳을 얻어 나가면 된다. 감당 안 되면 우리처럼 떠날 수밖에 없는 일 어쩌랴. 이제 자리 잡고 안정됐나 싶은데 턱없는 임대료 인상에 주인과 대판 싸웠다는 옆 가게 칼국수집, 울며 겨자 먹기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디시마트, 신발가게, 세탁소..

[계간 문파문학 2020 겨울호 시마당] 이란자 - 빈터

빈터 산더미같이 큰 회오리 거친 바람을 퍼 부었다 생각의 빈 가지 쳐 내리고 뼈 속 깊이 웅크린 붉은 파편 소용돌이치며 부서졌다 미세먼지처럼 숨 막히는 일상의 권태로움 휘몰고 사라진 빈터에서 뒤틀린 몸짓 깃을 세우며 곧 터질 것 같은 파란 하늘 쳐다 본다 긁힌 둔턱엔 뽀오얀 새살 돋아나고 씻어놓은 쌀처럼 정갈한 모래위로 향기 머금은 물빛이 번진다 버들치 물가에 모여들며 가뭇가뭇 둥그런 춤을 추고 어린 백로의 가녀린 하얀 깃털 한 눈 큼 자라나는 초가을 장미빛 햇살 촘촘히 내려앉는다 이란자 | 2019년 계간 『문파』 등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