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어느새 나는 구릿빛 얼굴을 가졌다
검은 털이 듬성 박힌 울타리를 넘어가면
거기 왕따나무가 있대
누가 누굴 역모로 몰았는지 구릉은
울타리를 넘어 영험한 소문을 불러들였다
저녁 무렵이면 하늘은 원심력으로
나무를 끌어당겨 허공에 눕히고
새들은 소문을 잘게 부숴 깃털에 묻힌다
쥐똥나무꽃에 얼굴을 묻고 딱정벌레인 척
그렇게 살아도 아무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지만
나는 어느새 구릿빛 피부를 가졌다
꿀꿀한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자전거를 내달렸지만
온통 검은 털만 뒤집어쓰고 돌아온 저녁
마을 입구엔 누구나 살기 좋은 마을이
말뚝처럼 깊게 파묻혀 있다
김효선 | 2004년 계간 『리토피아』등단. 시집 『서른다섯 개의 삐걱거림』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 『어느 악기의 고백』. 시와경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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