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의 영역
못을 박아 우기를 걸어 두면
바랜 벽을 기어오르는 검은 꽃
이불과 향은 한 다발이 되고
어둠의 시접이 창 쪽으로 접힌다
한때의 꽃이 피는
우기의 방
여전히 달큰한 검정
벽에 붙어 있는 식탁이 고요해서
불빛들만 시끄럽고
꽃은 소란을 지난다
한 사람을 보내고
누워 있는 방이 너무 넓어
여름을 몰아쉬는 동안
끈적하게 달라붙는 거짓말
되돌리고 싶은 마음을 꽃으로 모았으면
사막 몇 개쯤 덮고도 남았을 텐데
한껏 몸을 말아 발자국을 받아적다가
끄덕이다가 아, 다시 다시
한 사람을 지나치는
말의 씨앗들
도처에서 만발하는 검은 향
검정은 감정의 소용을 넘고
빗줄기를 타고 흐르다
어느 날에 덩그러니 걸린 묵음
한 사람이 멀어져도
잠시 울고 잠시 웃을 수 있고
시절이 지나도 그때의 향은 남는다
비의 갈피에 꽂아둔
꽃처럼 생긴 꽃은
들키고 싶지 않은 유일한 불행
눅눅하고 좁은 한 행을 배경으로 피어오른 꽃을
뒤적인다
오늘 | 2006년 『서시』 등단. 시집 『나비야, 나야』.
반응형
'시마당 > 2020년 가을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간 문파문학 2020 가을호 시마당] 김유자 - 시간의 머릿결 쓸어주기 (0) | 2020.12.24 |
---|---|
[계간 문파문학 2020 가을호 시마당] 정연희 - 꽃피는 아몬드 나무 (0) | 2020.12.24 |
[계간 문파문학 2020 가을호 시마당] 최정우 - 몸 (0) | 2020.12.24 |
[계간 문파문학 2020 가을호 시마당] 박순원 - 출근 준비 (0) | 2020.12.24 |
[계간 문파문학 2020 가을호 시마당] 권정우 - 살구 꽃잎 (0) | 2020.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