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당/2020년 가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가을호 시마당] 오늘 - 후각의 영역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 12. 24. 15:55

후각의 영역

 

 

못을 박아 우기를 걸어 두면

바랜 벽을 기어오르는 검은 꽃

이불과 향은 한 다발이 되고

어둠의 시접이 창 쪽으로 접힌다

 

한때의 꽃이 피는

우기의 방

여전히 달큰한 검정

벽에 붙어 있는 식탁이 고요해서

불빛들만 시끄럽고

꽃은 소란을 지난다

한 사람을 보내고

누워 있는 방이 너무 넓어

여름을 몰아쉬는 동안

끈적하게 달라붙는 거짓말

되돌리고 싶은 마음을 꽃으로 모았으면

사막 몇 개쯤 덮고도 남았을 텐데

한껏 몸을 말아 발자국을 받아적다가

끄덕이다가 아, 다시 다시

 

한 사람을 지나치는

말의 씨앗들

도처에서 만발하는 검은 향

검정은 감정의 소용을 넘고

빗줄기를 타고 흐르다

어느 날에 덩그러니 걸린 묵음

한 사람이 멀어져도

잠시 울고 잠시 웃을 수 있고

시절이 지나도 그때의 향은 남는다

 

비의 갈피에 꽂아둔

꽃처럼 생긴 꽃은

들키고 싶지 않은 유일한 불행

 

눅눅하고 좁은 한 행을 배경으로 피어오른 꽃을

뒤적인다

 

 

 

 

 

오늘 | 2006년 『서시』 등단. 시집 『나비야,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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