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가 익어갑니다
내가 여름을 다 말해버리면
옥수수는 익지 않는다
촘촘한 치아가 아름답다고들 하지만
매미 울음이 어금니에 박혀 빠지지 않는다
뭉개어지고 으깨어지는 말들
입속이 붐비면
처진 어깨를 조금 흔들어 보이거나 으쓱거려본다
치아와 치아 사이에 거웃처럼
비밀이 자란다
혀를 길게 빼문 한낮의 발설에
귀를 기울이던 바람이
천천히 수염을 쓸어내린다
태양의 내란과 음모를 기억하던
여름이 벌어진 입을 조금씩 다문다
단전을 끌어올려 이빨 사이로
스,스,스 날숨을 뱉어본다
독 오른 뱀이 산으로 올라가고
당신이 잘 볶은 옥수수차를
말없이 내놓던 일
근자에,
더 좋은 일은 없었습니다
옥수수는 이미 무량무량 익었습니다
변희수 |2011년 영남일보, 201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아무것도 아닌, 모든』 『거기서부터 사랑을 시작하겠습니다』. 천강문학상, 제주 4.3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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