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답서스는 날개를 단 흔적이 있다
베란다 창틀에 쿵! 무언가 부딪치고
빨래 건조대에서 표백되어가던 햇빛 몇 벌이 출렁거린다.
위층에서 던진 화분이 떨어지고
나는 난간에 걸린 푸른 줄기를 순간 낚아챘다.
날개는 많이 상해 있었지만 잔뿌리와 줄기는
몇 몇 남아 있었다.
그는 깊은 혼수상태에 빠진 뒤 며칠 만에 깨어났다.
기진해 있던 입에서 뭉친 숨길처럼 광합성을 토해내고
철봉 하듯이 제 몸을 늘이는 것이 아닌가.
잎이란 잎에서는 푸른 박쥐들이 튀어나와 날아올랐다
날마다 허공을 붙잡고 제 몸 늘여 내려오더니
우리 집 베란다를 곧 진초록으로 물들여놓는다.
잠도 자지 않고 제 몸을 늘이고 늘이는
그를 나도 모르게 그만 꺾고 또 꺾어내었다.
자고나면 생기고 생기는 매듭들
통제할 수 없는 그 생명력을 보는 건
왠지 서러운 일이었다.
어느덧 몸 수척해진 스킨답서스
그는 언제고 날아갈 태세로 내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미세먼지 없는 어느 날 위층 요란한 곤돌라 소리에
열린 창문으로 박쥐 떼처럼 그것들이
정말 날아가 버린 건 얼마 전이었다.
빈 하늘뿐이었다.
노향림 | 1970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눈이 오지 않는 나라』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 『푸른 편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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