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당/2021년 봄호

[계간 문파문학 2021 봄호 시마당] 김명서 - 유리병 속의 혀

알 수 없는 사용자 2021. 3. 18. 17:08

 

  유리병 속의 혀

 

 

 

  X의 친절에는 독이 숨겨져 있었다

 

  못질 한번 없이 진리의 집을 짓는 성자의 모습에 발을 들여놓고, 줄기차게 떠들어대던
  상생과 정의
  의로운 언어 뒤에 숨은 혀로 살생부를 찍어낸다

 

  나의 둥지에도 복화술 암호를 심어놓고
  한물간 정보와 낙서까지 해킹해 갔다

 

  금간 감정선을 땜질하고 우그러진 곳을 펴보려 했으나
  만성질환이 되어버린 불신은 불안으로 뒤바뀌고
  더욱 캄캄해져만 가는 대낮
  햇빛을 찾아 더듬거리는 내게
  X가 쏜 독설이 환상통인 듯 늑골을 파고든다

 

  X는 훔쳐낸 정보를 망상의 페이지에 끼워 넣고
  화려하게 각색을 하고 날개까지 달아놓았다

 

  진원지를 떠난 소문에 점점 가속도가 붙는다

 

  소문이 지나간 허공에 뒹구는 허구의 입자들

 

  한 번쯤 자신의 궤적을 돌아봐
  도대체 어떤 악령을 섬기는지
  더는 자신을 그르치지 말기를

 

  X는 유다의 후예라서 그렇다고 변명 같은 고백을 웅얼거리는데 말꼬리 사이사이 탈바가지 웃음이 언뜻언뜻 피어난다 뜻 모를 연민이 소용돌이친다 그러나

 

혀가 없는 목소리에서 악취가 난다

 

 

 

 

 

김명서 | 2002년 『시사사』 등단. 시집 『야만의 사육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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