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당/2021년 봄호

[계간 문파문학 2021 봄호 시마당] 손택수 - 요즘의 실어증

알 수 없는 사용자 2021. 3. 18. 17:00

 

요즘의 실어증

 

 

 

젖가슴이란 말을 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내 시에서 습관이 된 말들,
젖가슴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볼멘소리가 가래처럼 끓어오르지만
가려운 목청을 애써 눌러 참는
젖가슴은 언제부턴가 내겐 하나의 금기어다
젖가슴을 따라오던 달이나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 같은
이미지들과 이별 연습을 하게 한다
그건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
덜 마른 매미 허물이 뜯겨 일어나는 일, 허나
달도 해변도 쓸 수 없게 되었을 때
모래알을 씹는 혀로 쓰다듬는 사구가 새로 생겨난다
나의 사구는 흐름을 멈춘 적이 없는 육체다
솟고 가라앉고 포복하고 날아오르며
한 알의 뒤척임이 사막 끝자락을 펄럭이게 하는 백지
앞에서 나는 말을 처음 익히는 아기로 돌아간다
백지의 젖가슴에 안겨 수유를 다시 시작한다
이 경이야말로 잃어버린 고통과 두려움의 선물이 아닌지,
옳거니 글을 쓰다가 젖가슴 앞에서 멈춘다
수국을 쥔 손을 브래지어 컵으로 비유했던 시를
새 시집에 담는 것이 영 망설여지는 시절,
이런 걸 시라고 발표해도 될지
전전긍긍을 하면서

 

 

 

 

 

손택수 |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목련
전차』 등. 제2회 조태일문학상, 제13회 노작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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