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당/2020년 겨울호

[계간 문파문학 2020 겨울호 시마당] 김종태 - 히라노 신사의 벚꽃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 12. 28. 17:53

히라노 신사의 벚꽃  

 

 

축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가

 

유치원생처럼 작아진 노파를 휠체어에 얹은 가족이

줄지어 종종걸음 신사로 들어오고

약수터 흐르는 물소리가 잦아들 무렵

얼마 안 남은 생의 안쪽을 들여다보듯이

백발 노파는 포옥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이제 이승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의 끈을 날줄 삼아 그 위로 벚꽃의 시간을 씨줄로 엮는 마음들

꽃잎의 분홍 그림자가 거무죽죽 저승꽃을 물들이듯이

연분홍 솜사탕을 든 소년이 죽순 구이 입에 문 소녀를 바라보듯이

여기저기 스쳐 지나가는 삶의 향연들 시간의 행렬들

오늘밤 저 꽃들 중에 절정의 음역에 닿는 것 또한 있을 것이다

아무리 깊어진 봄이더라도 꽃이 진 자리에

다시 새로운 꽃잎들이 피어나진 않을 것이다

벚꽃 진 옆 자리, 그 옆옆 자리서 살살 흔들리는 바람도

노파의 후생을 괘념치는 않을 것이다

하루가 저물어 갈 때 노파는 어둠의 틈으로 꽃 빛을 내다본다

제 영혼이 누울 신사의 귀퉁이를 가늠하고 있을까

밤의 꽃이 죽음의 음정으로 삶의 노래를 조율하듯이

언젠가 한번쯤 나도 후세의 자손이 미는 휠체어에 얹힌 채

이 신사를 다시 찾아와 새로 내민 벚꽃잎들과

오래된 영혼들이 수런대는 소리에 귀 젖을 수 있을까

 

그때도 축제는 계속되고 있을까

 

 

* 히라노 신사(平野神社): 일본 교토에 있는 신사.

 

 

 

 

 

김종태|1998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떠나온 것들의 밤길』 『오각의 방󰡕 등. 시와표현작품상, 문학의식작품상, 문학청춘작품상 수상. 현재 호서대학교 교수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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