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노 신사의 벚꽃
축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가
유치원생처럼 작아진 노파를 휠체어에 얹은 가족이
줄지어 종종걸음 신사로 들어오고
약수터 흐르는 물소리가 잦아들 무렵
얼마 안 남은 생의 안쪽을 들여다보듯이
백발 노파는 포옥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이제 이승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의 끈을 날줄 삼아 그 위로 벚꽃의 시간을 씨줄로 엮는 마음들
꽃잎의 분홍 그림자가 거무죽죽 저승꽃을 물들이듯이
연분홍 솜사탕을 든 소년이 죽순 구이 입에 문 소녀를 바라보듯이
여기저기 스쳐 지나가는 삶의 향연들 시간의 행렬들
오늘밤 저 꽃들 중에 절정의 음역에 닿는 것 또한 있을 것이다
아무리 깊어진 봄이더라도 꽃이 진 자리에
다시 새로운 꽃잎들이 피어나진 않을 것이다
벚꽃 진 옆 자리, 그 옆옆 자리서 살살 흔들리는 바람도
노파의 후생을 괘념치는 않을 것이다
하루가 저물어 갈 때 노파는 어둠의 틈으로 꽃 빛을 내다본다
제 영혼이 누울 신사의 귀퉁이를 가늠하고 있을까
밤의 꽃이 죽음의 음정으로 삶의 노래를 조율하듯이
언젠가 한번쯤 나도 후세의 자손이 미는 휠체어에 얹힌 채
이 신사를 다시 찾아와 새로 내민 벚꽃잎들과
오래된 영혼들이 수런대는 소리에 귀 젖을 수 있을까
그때도 축제는 계속되고 있을까
* 히라노 신사(平野神社): 일본 교토에 있는 신사.
김종태|1998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떠나온 것들의 밤길』 『오각의 방 등. 시와표현작품상, 문학의식작품상, 문학청춘작품상 수상. 현재 호서대학교 교수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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