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당/2020년 겨울호

[계간 문파문학 2020 겨울호 시마당] 김미정 - 블라인드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 12. 28. 18:00

블라인드

 

 

벌어진 햇살 사이로 손가락을 넣는다

 

눈 감고 뛰어내리는 창문의 비명들

 

차례로 쌓인 계단의 신호음이 사라진 시간을 깨운다

 

몸을 옆으로 돌리면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여러 번 익숙한 자세로

 

너와 나 사이 빗금을 그으며 허공을 당긴다

 

종이를 만지다 손이 베어진 느낌으로

 

침묵을 가늘게 채 썰어 그늘에 넣고

 

감아올리는 행위는 내일의 반복이다

 

말없이 빠져나간 나를 훔쳐본다

 

떨리는 눈꺼풀은 불안을 날리고

 

안에서 밖을 보며 생을 중얼거린다

 

옷을 벗고 태양을 내린다

 

물컹한 바람의 고백이 구겨진다

 

 

 

 

 

김미정 | 2002년 『현대시』 등단. 시집 『물고기 신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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