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벌어진 햇살 사이로 손가락을 넣는다
눈 감고 뛰어내리는 창문의 비명들
차례로 쌓인 계단의 신호음이 사라진 시간을 깨운다
몸을 옆으로 돌리면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여러 번 익숙한 자세로
너와 나 사이 빗금을 그으며 허공을 당긴다
종이를 만지다 손이 베어진 느낌으로
침묵을 가늘게 채 썰어 그늘에 넣고
감아올리는 행위는 내일의 반복이다
말없이 빠져나간 나를 훔쳐본다
떨리는 눈꺼풀은 불안을 날리고
안에서 밖을 보며 생을 중얼거린다
옷을 벗고 태양을 내린다
물컹한 바람의 고백이 구겨진다
김미정 | 2002년 『현대시』 등단. 시집 『물고기 신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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