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당/2020년 겨울호

[계간 문파문학 2020 겨울호 시마당] 김성규 - 하루 전날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 12. 28. 18:06

하루 전날  

 

 

짐을 나르는 그의 뒤에

죽은 사람이 서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독하게 지쳐 쓰려졌을 때

그는 슬픔을 느꼈을까요

잠들기 직전 펜을 잡고 써봅니다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이었는지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쓰러져 잠에 빠진 날

죽은 사람이 나를 보고 서 있습니다

잠 속에서

나는 느낄 수 있습니다

 

다음 날, 아니면 그다음 날

그만두어야 함을 알지만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한 줄 써봅니다

 

아무리 고통을 당해도

마음은 단련되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이 내 이마를 쓸어주고 있습니다  

 

 

 

 

 

김성규 |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너는 잘못 날아왔다』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 신동엽문학상, 김구용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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