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창
아침 창문을 열자 쏴아한 바람이 선선하다 동쪽 등성 넘어선 햇빛 자작거리며 그늘 숲 지나 아파트 모서리 바닥이 따뜻하다
부엌에선 난데없는 아내의 깍 마른 소리 귀뚜라미 한 마리 설거지통에 빠져 허우적거린다고 허겁 거린다. “네가 어찌 여기까지.” 손 살며시 쥐어 창밖으로 넘겨 환생의 길 터줬다
본고향 찾아간 귀뚜리 익어서 누워버린 볏단 위에 메뚜기와 한 쌍 되어 시린 사정 열어놓고 풍성의 노래 한 곡조 신나게 부르는데 그 맑음이 너무 청냉스러워 정선 아리랑도 웃음 짓고 지나갔다
볏단에 농로는 길어 밀짚모자의 비지땀 바쁘게 익어가고 벌이 쏘지 않아도 저절로 터지는 밤송이 꽉 찬 속살이 알알이 익어 떨어지는 밤. 저녁 살을 채운다
들판에 땀내 나는 향기로 바닥에 번져가고 하루해가 짧아 논두렁은 숨이 가쁜데 한가한 청개구리 토란잎에 앉아 깊이 쉬고 있다
마른 가지에 늘어 붙은 다 벗고 가버린 매미 허물 대롱대롱 매달려 지난여름 왜 그렇게 울어댔는지 묻고 있고, 농로엔 경운기 한 대 통통 거리며 지나고 있다
김건중 | 2014년 계간 『문파』 등단. 시집 『길 위에 길을 놓다』 등. 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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