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의 도시
안개의 나라엔
소리들이 모여 산다
폭주족처럼 제멋대로 들이 닥치거나
보이지 않는 소리들이 텃밭을 갈고 밥을 먹고
자동차가 시동을 걸고 일터로 간다
때로 안개의 흡반에 빨대를 꽂고
소리들을 먹어치울 때가 있다
수심 깊이 소리들 가라앉아 수심(愁心)이 되는
안개의 도시에서
얼굴을 덮어버린 마스크
텅 빈 거리
봉쇄 된 입
한 때 야단법석의 오후를 가졌던 사람들도
하나 둘 안개의 도시로 몰려들었다
어느 날 불쑥 여기를 떠나 저기로 사라진 사람들
지리산 한 달살이 혹은 섬사람 되어보기 같은 것
안개처럼 뭉쳤다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들이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손짓한다
누구나 잠시 멈출 필요가 있다고
아직도 존재를 걸고 시를 쓰거나
몇 개의 약속을 늘어놓으며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
어서 빠져나오라고
긴 겨울이 기다리고 있어
지금은 침묵할 때,
안개의 도시에서도 내일의 태양은 다시 떠오를 거니까
김지헌 | 1997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회중시계』 『배롱나무 사원』 『심장을 가졌다』 외 2권. 미네르바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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