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당/2021년 가을호

[계간 문파문학 2021 가을호 시마당] 홍은택-어떤 오후가

Ofil 2021. 12. 9. 14:59

어떤 오후가

 

 

붉고 투명한 비늘을 단
거대한 물고기 몸짓으로 헤엄쳐간다


정적 속으로 구릿빛 뒤웅박이
징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그들의 정수리를 딛고
익숙한 태양이 뚜벅뚜벅 걸어간다


낮잠을 갈아 내린 드립커피 한 모금
피카소의 시선으로 발뒤꿈치를 바라본다


잠결 따라 스트레칭 하듯 모란 꽃잎이 피고
꽃잎 따라 펼쳐지는 몇 갈래 인연들


점점 키가 작아지는 담벼락 끝 멀리
파블로프의 뒤통수가 소실점으로 사라진 뒤


잠깐 잠을 더 잘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침묵
노래하는 법을 잊은 어떤 오후가

 

 

 

 

 

홍은택 | 1999년 『시안』 등단. 시집 『통점에서 꽃이 핀다』 『노래하는 사막』. 공역시선 『영어로 읽는 한국의
좋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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