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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2020년 가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가을호 시마당] 이재연 - 우리가 잠시 바다였습니다

우리가 잠시 바다였습니다

 

 

눈이 꽃을 먹는 사월

 

가라앉는 해를 한없이 바라보다

바다에 도달하고 말았다

 

아무도 달라지지 않는 월요일에

바다에 도달하는 것은

 

다른 사람은 나를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나를 모르는 세계에 도달하는 거와 같아

바다에도 월요일이 출렁거린다

 

사람이 없는 바다에도

사람이 없는 바다를 그리워하는 데도

 

바다는 꿈쩍하지 않고

가라앉는 세계를 천천히 삼킨다

 

시간이 지나간 뒤에도

바다에는 바다의 일만 남아있어

바다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서 바라보는 관점을

모두 봄이라고 이야기 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기다리는 것으로는

아무도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조용히 지나가지 않겠지만

 

서로 주고받은 이야기는

오래 동안 바다에 가라앉아 있을 것이다

 

사월처럼

사월의 무덤처럼 파랗게

우리가 잠시 바다였습니다

 

 

 

 

 

이재연 | 2005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2년 오장환 신인문학상 수상(실천문학).

시집 『쓸쓸함이 아직도 신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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