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초대시인

(6)
[ 이 계절의 초대시인] 장석주 ★ 장석주 시인의 신작시 ★ * 저녁이란 장소 저녁입니다. 당신은 해진 신발을 신고 돌아왔어요. 눈은 주황색 피로로 가득하고 당신이 걸친 외투의 소매 끝은 남루했어요. 왜 나쁜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을까요? 저녁은 텅 빈 손으로 돌아왔어요. 양탄자도 깃털도 카스테라도 없군요. 우리가 양羊과 장미를 지키고, 비와 구름의 양육권을 지키려면 누군가는 희생해야 되겠지요. 나는 상심을 숨기려고 손에 쥘 수 없는 것을 가만히 어루만졌어요. 소금은 흰데 그 안은 어둡습니다. 내가 더 순진했던 걸까요. 내 손이 어루만진 건 표면에 돌기가 돋은 어둠이었죠. 저녁은 뱀과 고독과 실패가 발견되기에 마땅한 장소죠. 검은 우산을 펼치고 숨고 싶습니다. 내게 빨간 장미를 선물할 필요는 없어요. 당신이 여태 누구인가를 말해..
[이 계절의 초대시인] 장석남 ★ 장석남 시인의 신작시 ★ * 얼음의 일 조선 무쇠 솥을 길들여 난로 위에 얹고 물을 부어 끓이네 물이 끓으면 물이 끓으면 밤은 덩달아 깊고 되돌아 갈 수 없이 깊어지면 저편 하늘은 비어 또 동구 밖으로 나설 일 생길거야 묵은 가위를 닦고 걸레를 빠네 다섯 개의 난로를 피워 놓고 엄동을 맞아 다섯 군데에 난로를 놓고 불을 피웠답니다 무릎 치는 추위가 닥쳐옵니다 가루 눈이 날려요 다섯 군데의 탄불은 제각각 붉고 제각각 자고 잠들다 아주 시드는 불에 주인은 다시 시퍼런 밑불을 넣어 살려놓습니다 난로 곁에는 그러나 주인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어려서 추워 죽은 귀신이나 가끔 있을까 사노라 맛보던 치욕이나 졸며 있을까 다 비고 온기만이 여럿입니다 딱딱한 골바람 건너다니며 불들을 보살피니 반려불이라 하겠습니다 ..
[이 계절의 초대시인] 최서림 ★ 최서림 시인의 신작시 ★ * 고흐의 해바라기 아를르의 태양은 해바라기를 닮았다. 우울을 몰아내기 위해 작업실을 태양빛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친구를 초대하기 위해 온통 해바라기 그림만으로 메웠다. 이 세상에서 복제품이 가장 많은 가장 잘 팔리는 고흐의 해바라기, 식당에도 술집에도 모텔에도 대중목욕탕에도 빠짐없이 걸려 있다. 구겨진 마음을 펴주는 그림인가. 돈을 끌어 모아다 주는 부적인가. 강남 화실에 그림 배우러온 노인이 고흐의 황금빛 해바라기부터 모작하고 있다. 코로나 불경기로 우울한 이 도시 갤러리마다 해바라기 꽃들이 만개해 있다. 고흐처럼 가난한 화가들에게 해바라기 꽃 그림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 민감한 애인 날씬하고 곧게 뻗은 몸매처럼 성질 또한 직선이다 하루라도 다정하..
[이 계절의 초대시인] 정끝별 ★ 정끝별 시인의 신작시 ★ 갈매기의 꿈 To the real Jonathan Livingston Seagull, who lives within us all 하얀 새 한 마리가 긴 날개를 펴고 동쪽을 향해 날고 있었어 흰 날개를 받쳐주는 저 파랑은 바다였을까 하늘이었을까 오른쪽 날개에는 세로로 쓰는 갈매기의 꿈이 왼쪽 날개에는 가로로 쓰는 Jonathan Livingston Seagull a story가 펼쳐졌다가 판권에서 만났어 갈매기의 꿈 (값 500원) ∼∼∼∼∼∼∼∼∼∼∼∼∼∼∼∼∼∼∼∼∼∼∼ 西紀 1974年 4月 15日 印刷 西紀 1974年 4月 25日 發行 著 者 리 처 드 바 크 譯 者 李 相 吉 발행인 方 義 煥 발행처 世 宗 閣 서울특별시 관악구 본동 127 출판등록 1962.11.3.(..
[이 계절의 초대시인] 나태주 ★ 나태주 시인의 신작시 ★ * 오는 봄 마당을 쓸고 길을 쓸고 화단에 있는 검불을 걷어 냈다 봄님이 오시는 길을 마련해드린 것이다 언제든 힘들게 사고를 치면서 오시는 봄님 결코 공짜로는 오지 않고 공짜로는 또 가지 않는 봄님 올해도 힘들게 오셨으니 갈 때는 부디 곱게 소리 나지 않게 물러가 주시기 바랍니다. / 울음 앞에 기다리마 문 열어 놓고 너를 기다리마 어둔 밤길 자갈밭 길 등불도 없이 떠났다가 어디라 없이 헤매고 있을 너 너 기다려 잠들지 않고 문고리 안으로 걸지 않고 밤을 새워 기다리마 다만 기다려 너 분명 돌아올 때까지 만이라도 울지 않으마 울음을 참고 있으마. ★ 나태주 시인의 대표시 ★ 대숲 아래서 1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 내 마음은 ..
[이 계절의 초대시인] 문태준 == 문태준 시인의 신작시 == * 새와 한 그루 탱자나무가 있는 집 오래된 탱자나무가 내 앞에 있네 탱자나무에는 수많은 가시가 솟아 있네 오늘은 작은 새가 탱자나무에 앉네 푸른 가시를 피해서 앉네 뾰족하게 돋친 가시 위로 하늘이 내려앉듯이 새는 내게 암송할 수 있는 노래를 들려주네 그 노래는 가시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듯하네 새는 능인能仁이 아닌가 새와 가시가 솟은 탱자나무는 한덩어리가 아닌가 새는 아직도 노래를 끝내지 않고 옮겨 앉네 나는 새와 한 그루 탱자나무가 있는 집에 사네 * 봄 휘어진 수양버들 가지에 봄빛은 새는 노래하네 간지럽게 뿌리도 연못의 눈꺼풀도 간지럽게 수양버들은 버들잎에서 눈 뜨네 몸이 간지러워 끝마다 살짝 살짝 눈 뜨네 == 문태준 시인의 대표시 == 이별 나목裸木의 가지에 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