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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202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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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문파문학 2020 가을호 시마당] 장현 -「index.」 「index.」 July 11, 2020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겨 답을 합니다. 여러 번 얘기했지만, 두 가지 일을 하느라 장현이가 그 누구보다 힘든 학기를 보냈을 겁니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과제를 마무리해줘서 고마워요. 혹시라도 학우들에게 상대적 박탈감 등의 감정이 생길까 봐 소소한 과제들도 표나게 주문했던 걸 이해해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제 검색하다 보니 가 발간되었던데 억수로 축하해요! 장현이 만날 날이 아직 먼 것 같은데 직접 받는 기쁨을 위해 참아보겠습니다.^^ 방학 동안 좋은 시간, 힘든 시간, 휴식의 시간을 두루 나누면서 더욱 큰 시인의 발판을 다지길 바랍니다. 이영숙 선생님의 메일 받았고 June 31, 2020 채미희 계속해서 MBTI검사를 권해 데이터 빅데이터 속에서 너 이러다가 이..
[계간 문파문학 2020 가을호 시마당] 김동균 - 환송 환송 외판원이 노래를 튼다 노래엔 외판원이 등장한다 약국 왼쪽을 돌아 나온 외판원이 노래를 따라 찾아왔고 외판원들이 모여 있는 외딴곳에서 외판에 대해 은밀한 얘기를 나눈다 수요일에는 단상에 올라간 외판원이 외판에 실패하는 대표적인 사례를 설명한다 “제 경우에는 지하상가 입구에서……” 로 시작하는 이야기가 들린다 목요일의 외판원이 중요한 점을 선별해서 수첩은 까매진다 금요일에는 그리고 토요일에는 여행용 가방을 끌고 나가는 외판원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외판원끼리 마주쳐서 외판을 식별하기도 한다 “반갑습니다” 마치 처음 보는 물건인 것처럼 모든 쓰임에 관해서 빠짐없이 알려주겠다는 듯이 외판원은 친절하고 정중하게 고개 돌리는 법을 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의 목소리는 마지막으로 묻는 것처럼 들린다 물건..
[계간 문파문학 2020 가을호 시마당] 최완순 - 봄 봄 죽어가는 것들의 소생력 치열하다 검은 얼굴 꽃비로 세수하고 가지마다 태아의 울음소리 맺히면 새 살 돋아난 생명들 들숨날숨 꽃이다 껍질 벗겨진 새뽀얀 아가의 얼굴 핏물 물고 상처 치유하는 저 환희 살갗 터지는 고통들의 잔치 숨소리 숨소리들 파랗다 웃음소리 웃음소리들 싱그럽다 생의 서막이 우렁차다 최완순 |2011년 계간 『문파』 수필, 2019년 시 등단. 시집 『네 눈 속에 나』. 수필집 『두릅 순 향기와 일곱 살 아이』 『꽃삽에 담긴 이야기』.
[계간 문파문학 2020 가을호 시마당] 이리영 - 메리고라운드 메리고라운드 낡아 빠진 오버롤을 입은 아이야, 네 손에 들린 잘 익은 토마토와 딱딱한 바게트 한 쪽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 마법 하루 종일 밤 냉장고에 죽은 고기들이 오래 핏빛을 잃지 않는 이유를 물었지 투명한 물병에 개미들을 수북이 빠뜨리며 풀을 뜯어먹던 말들이 달아나는 곳으로 길어지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두려울 게 없다고 속삭이는 해바라기 밭으로 반짝이는 펜던트들은 훔쳐 더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아 천천히 고개를 젓고 모든 것이 젖어버리는 빗속으로 커다란 눈으로 펄럭이는 이파리 사이로 높고 높은 지붕 위로 큰 장화를 신고 개울을 건너는 아이야, 바람에 부풀어 오르는 주름치마를 따라 아주 멀리, 더 멀리 가면 태어난 것을 잊을 테니 이리영 | 2018년 『시인동네』 등단.
[계간 문파문학 2020 가을호 시마당] 이중환 - 낙엽이불 낙엽이불 갈바람이 재촉하듯 후두둑 낙엽 진다 절정의 단풍 낙엽으로 대지를 덮는다 벌거숭이 나무 발목만 덮듯 우리도 낙엽이불로 발목만 덮자 삭풍에 마지막 잎새마저 떨어지고 모진 칼바람 귀볼 때리는 겨울이 와도 벗은 나무가 추워하지 않는 것은 뜨겁게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겹겹의 사랑이 묻은 낙엽이불로 발목만 덮자 이중환 |2017년 계간 『문파』 등단. 시집 『기다리는』.
[계간 문파문학 2020 가을호 시마당] 이춘 - 조그만 기억 조그만 기억 외진 길섶 댓돌 위에 서서 머리 위로 드리운 산사나무 여린 가지 하나를 왼쪽 가슴께로 당겨 잡고 셀폰 사진을 찍었다 떨며 잡고 있는 가지 끝에 짧은 순간 바람이 완강한 소리로 울었다 댓돌 내려서며 손을 놓아 허공으로 돌아간 가지 끝 이파리들의 출렁임이 먼 구름을 배경(背景)으로 차츰 잦아지고 소리만 남겨둔 채 바람은 멎었다 가던 길 이어가는 발걸음은 산사 꽃 흩날리는 전경(前景) 속에 들어갔다 한갓진 이 길섶에 잠시 와서는 소리 깊게 남기고, 바람이 떠난다 이춘 |2013년 계간 『문파』 등단. 시집 『답신』. 제12회 문파문학상 수상.
[계간 문파문학 2020 가을호 시마당] 신은숙 - 묵호 묵호 언덕과 바다가 내외처럼 낡아가는 동네 언덕 꼭대기 집어등 닮은 쪽창들 간밤 수다를 토해 놓으면 아침 바다 윤슬이 노래로 다독인다 어깨가 내려앉은 논골담 고샅엔 수국이 한창이고 폐가 담쟁이는 마당을 지나 지붕까지 힘줄을 엮는다 살아 푸른 건 거기까지 나폴리도 여기선 다방을 차리고 극장은 종일 필름을 돌려도 '돌아온원더할매' 혼자서 웃고 있다 모퉁이 돌면 고래가 쏟아지고 허공이 따르는 막걸리에 목을 축인다 오징어는 담벼락에서 빨래처럼 말라가고 묵호야 놀자 했더니 용팔아 이놈쉐끼 어매 빗자루가 날아온다 페인트 칠 벗겨진 벽화들마다 마음이 펄럭인다 묵묵히 기다림의 자세로 눈 먼 저무는 등대에 기대 바다를 보면 떠난 애인은 다 묵호여서 눈 감아도 묵호만 보이고 그 이름 부르면 비릿한 멀미 다시는 못 갈 것 ..
[계간 문파문학 2020 가을호 시마당] 이재연 - 우리가 잠시 바다였습니다 우리가 잠시 바다였습니다 눈이 꽃을 먹는 사월 가라앉는 해를 한없이 바라보다 바다에 도달하고 말았다 아무도 달라지지 않는 월요일에 바다에 도달하는 것은 다른 사람은 나를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나를 모르는 세계에 도달하는 거와 같아 바다에도 월요일이 출렁거린다 사람이 없는 바다에도 사람이 없는 바다를 그리워하는 데도 바다는 꿈쩍하지 않고 가라앉는 세계를 천천히 삼킨다 시간이 지나간 뒤에도 바다에는 바다의 일만 남아있어 바다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서 바라보는 관점을 모두 봄이라고 이야기 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기다리는 것으로는 아무도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조용히 지나가지 않겠지만 서로 주고받은 이야기는 오래 동안 바다에 가라앉아 있을 것이다 사월처럼 사월의 무덤처럼 파랗게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