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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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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인의 미술 이야기] 유종인- 조선의 그림과 제화문:풍속화(上) 조선의 그림과 제화문題話文 풍속화 上 조선의 풍속화는 문인 사대부의 그림이나 전문 도화서 화원畵員속에서도 귀중한 당대적 삶의 실상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진솔한 궤적이다. 다른 모든 그림들도 그렇겠지만 특히 풍속화는 그 당대의 구체적인 진실을 진솔하게 담아 시간의 격절隔絶을 넘어 현시할 수 있는 이미지의 타임캡슐이다.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의 내밀한 속살을 들여다보고 그 현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감각하게 한다. 이는 역사적 기록이나 왜곡된 분장粉粧의 매체로부터조차 소외돼 버린 당대의 여사여사한 민초들의 굴곡진 삶의 애환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해 볼 수 있는 유의미한 회화적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 지금 여기의 삶을 입체적으로 반추하고 객관화시킬 수 있는 예전의 오늘인 셈이자, 오늘로부터 그날을 ..
[작가가 좋아하는 작가] 김미원-나의 감옥의 벽 허물어지거라, 프리드리히 횔덜린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1770~1843)은 사후 50년이 지나 하이데거에 의해 빛을 본 시인이다. 정신 분열증으로 40여 년 동안 세상에서 유폐된 삶을 살다 간 불우한 시인이란 사실에 더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병에 걸려 고향 슈바벵으로 돌아온 갈 곳 없는 시인을 흠모한 목수가 자기 집 이층에 살게 하면서 돌보았으니 더없이 드라마틱한 삶이 아닐 수 없다. 횔덜린은 아버지를 두살 때 여의고 새 아버지마저 아홉 살 때 잃었다. 목사의 딸이었던 어머니는 횔덜린이 목사가 되기를 바랐다.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을 알고 있던 횔덜린은 헤르만 헤세가 못 견디고 뛰쳐나온 규율이 엄한 마울브론 신학교를 졸업했다. 곧이어 명문 튀빙겐 신학교에 들어가 룸메이트였던 헤겔과 교류하면서 학업을 마치고 목사 자격증을 받았지만..
[영화 이야기] 홍유리 - 인터스텔라 영화 는 가까운 미래의 지구를 그린다. 황폐화된 자연환경으로 인류는 극심한 식량난에 허덕이고 대다수의 직업이 농업으로 전환된다. 전직 우주 비행사 쿠퍼 역시 병충해와 황사로부터 유일하게 살아남은 옥수수를 재배하며 자신과 맞지 않은 농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쿠퍼의 영민한 딸 머피는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방에서 일어나는 기현상에 주목하지만 누구도 머피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어느 날 머피의 방에 일정 패턴으로 황사가 쌓여 있는 것을 목격한 쿠퍼는 이것이 특정 지역의 좌표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쿠퍼와 머피가 좌표를 좇아 발견하게 된 것은 폐쇄된 것으로 알려진 나사 기지. 이는 외부로부터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세워진 우주선 발사체이자 그 자체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고안된 거대한 ..
[작가가 좋아하는 작가]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 시인 문정희 ‘느슨한 검정 니트를 걸치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수갑같이 큰 팔찌를 끼고 길에 나서면 창작의욕이 불같이 솟아났다’는, 온갖 현란함을 압도하는 검은빛으로 걸어오는 시인이 있다. 문정희 시인의 외출은 트레이드마크인 머플러는 물론이고 아방가르드한 외투나 재킷, 벨트, 액세서리까지 블랙 파노라마로 무장된다. 웨이브를 풀어 헤친 머리, 눈꼬리를 강조한 메이크업은 차도르 속에 비밀을 감춘 여인처럼 긴장감을 뿜어내고 그녀에게선 여전히 야성의 바람이 분다. ‘내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길에 나서면/ 사람들은 멋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녀의 상처를 덮는 날개입니다/ 쓰라린 불구를 가리는 붕대입니다’ - 「머플러」 중 문 시인에게 옷과 장신구는 사치가 아닌 자유와 고독의 표현이다. 일종의 글벽일까. 그는 시를 쓸 때도 몸의..
[영화 이야기] 홍유리 - 이제 그만 끝낼까 해 (1999), (2002), (2004)의 각본, (2007) (2015)의 각본 및 감독 등 인간 내면 탐구에 집중해온 찰리 카우프만이 이번에는 이안 미드의 동명 소설 를 영화화했다. 이 영화는 전작들의 연장선상에서 지금까지의 그 어떤 영화들보다 더욱 그 극단으로 치닫는다. 영화의 메인 플롯과 결합된 스토리는 표면적으로 단순하지만 기이하다. 제이크와 여자 친구는 시골에 사는 제이크의 부모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여자 친구는 가는 내내 제이크와의 이별을 고민하지만 말을 꺼내지 못하고 갈등한다. 제이크의 집에 도착해 부모를 만나는 동안 여자 친구는 제이크와 부모의 관계를 다양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경함하게 된다. 논문을 마쳐야 하는 여자 친구는 늦어지는 밤과 눈보라를 걱정하여 귀환을 재촉한다. 집으로..
[작가가 좋아하는 작가] 이토록 아름다운 낮은 자 권정생 Editor 박미경 가수 나훈아가 노래했다. ”테스형 천국은 있던가요. 소크라테스형 먼저 가 본 그곳은 어떤가요.“ 미세 먼지의 공포로 하늘을 올려보지 못한 채 살다가 코로나 19 덕분으로 투명해진 푸른 빛 가을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훈아 투로 묻고 싶어지는 한 사람이 떠오른다. ”권정생 선생님, 천국은 있던가요.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은 옳던가요.“ 병마와 가난과 고독으로 점철되었던 삶을 ”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 살았던 혹독했던 지상의 삶을 털고 하늘로 떠난지 13년. 그곳에서 행복하실까 궁금해진다. 글과 인격, 삶과 사상. 그리고 유언까지 일치한 거의 유일한 사람, 권정생은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은 뒤에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
[영화 이야기] 홍유리 - 덩케르크, 영화적 시간에 대한 놀란의 변주 크리스토퍼 놀란은 그의 전작들을 통해 영화 속 시간의 문제에 대한 명민하고 독창적인 시각을 보여 왔다. 결말로 시작해 도입으로 끝을 맺는 완전한 역구성의 나 현실과 꿈의 교차를 통해 동시 발생적이면서 또한 상대적인 시간의 흐름을 엮어낸 등 시간은 언제나 그의 주된 관심사였다. 는 그의 오랜 노력에 깊이를 더하여 영화적 시간의 형식적 완성도를 높일 뿐 아니라 형식 자체로서 주제의식을 강화하는데 주력한다. 이 영화는 1940년, 프랑스 덩케르크 만에 고립된 연합군 구출 과정을 담고 있다. 독일군의 모습을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전쟁의 구체적 양상이 아닌 개별자들의 생존 투쟁에 초점을 둔다. 혹자는 이 영화에서 적군의 공격을 자연재해에 견준다. 등장인물들에게는 하늘과 땅에서 쏟아지는 포탄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작가가 좋아하는 작가] 세상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최성각 Editor 박미경 작가는 왜 글을 쓰는가. 작가의 책무는 무엇일까. 문학의 기능은 또 무엇일까.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세상에서 ‘좋은 문학’, ‘좋은 작가’를 어떻게 가늠해야 할까. 사르트르는 그의 저서 『문학이란 무엇인가』 에서 “작가의 기능은 아무도 이 세계를 모를 수 없게 만들고, 아무도 이 세계에 대해서 ‘나는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도록 만드는 데 있다.“고 했다. 결국 작가는 시대적 상황이나 위기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거니와 그것을 깨우치게 하는 작가의 기능이야말로 ’좋은 작가‘에 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무 해 전에 최성각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선배의 사정으로 소설 창작 강의를 대신 하러온 그는 뜻밖에 동티모르 학살에 관한 동영상을 보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