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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홍유리 - 인터스텔라

영화 <인터스텔라>는 가까운 미래의 지구를 그린다. 황폐화된 자연환경으로 인류는 극심한 식량난에 허덕이고 대다수의 직업이 농업으로 전환된다. 전직 우주 비행사 쿠퍼 역시 병충해와 황사로부터 유일하게 살아남은 옥수수를 재배하며 자신과 맞지 않은 농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쿠퍼의 영민한 딸 머피는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방에서 일어나는 기현상에 주목하지만 누구도 머피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어느 날 머피의 방에 일정 패턴으로 황사가 쌓여 있는 것을 목격한 쿠퍼는 이것이 특정 지역의 좌표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쿠퍼와 머피가 좌표를 좇아 발견하게 된 것은 폐쇄된 것으로 알려진 나사 기지. 이는 외부로부터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세워진 우주선 발사체이자 그 자체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고안된 거대한 방주였다. 쿠퍼는 인류 이주를 위한 나사로 프로젝트에 합류하며 생존 가능한 행성을 찾아 우주 비행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벌어지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쿠퍼와 머피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의 힘을 통해 인류 생존의 열쇠를 찾게 된다.
‘우주 멜로드라마’, <인터스텔라>를 보고 받은 첫인상이었다. 쿠퍼의 딸에 대한 사랑이, 머피의 아빠에 대한 사랑이 위기를 극복하는 절대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쿠퍼도 머피도 아닌 또 다른 우주 비행사 아멜리아가 등장한다. 아멜리아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비행을 하게 되고 죽기 직전의 연인이 보내온 신호를 따라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행성을 발견하게 된다. 통상 대중 서사 영화가 마지막 장면에 메시지를 함축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영화의 주제는 아멜리아를 통해 전달될 것이다. 이 부분 역시 사랑을 통해 희망을 제시하므로 <인터스텔라>의 메시지는 ‘사랑’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렇게만 마무리하기엔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있다. 머피는 우여곡절 끝에 만나게 된 쿠퍼에게 다시 떠날 것을 요청한다. 이들 부녀의 마지막을 재회가 아닌 이별에 두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의 엔딩에 주인공 쿠퍼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사랑의 의미는 단순하게 ‘사랑’인가?
약 50년 전부터 감지되어온 중력 이상 현상과 그로 인해 발견하게 된 토성 근처의 웜홀. 나사는 생존 가능한 행성을 찾기 위해 1인 탐사선 10대를 웜홀로 보냈고 이들 중 세 개의 신호가 지구로 돌아왔다. 웜홀을 통해 다른 은하계로 이동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나사는 많은 사람을 이주시키는 플랜A와 수정란만을 데려가는 플랜B를 동시에 진행했다. 총괄 책임자인 브랜드 박사는 각고의 노력 끝에 거대 우주선이자 우주기지를 만들어 내는 것에 성공하지만 이 방주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중력 방정식을 풀어야만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브랜드 박사는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확신하며 쿠퍼와 자신의 딸 아멜리아를 포함한 비행사들을 우주로 보낸다.

 

 

수년간의 동면 끝에 웜홀을 통과한 그들은 세 개의 행성 중 가장 가까운 밀러 박사의 행성을 택한다. 그러나 이 행성은 오직 물로만 뒤덮여 있었고 해일 같은 파도가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곳이었다. 결국 대원 중 하나가 파도에 휩쓸려 사망하고 블랙홀의 영향으로 인한 시간의 상대적 흐름으로 23년 4개월이라는 지구의 시간이 소모된다. 쿠퍼 일행은 남은 두 행성 중 하나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나사로 프로젝트의 핵심 멤버인 만 박사의 행성과 아멜리아의 연인이 있는 에드먼즈의 행성 중에서 쿠퍼는 만 박사의 행성을 택한다. 만 박사가 10인의 우주 비행사 중 최고 권위자라는 점과 아멜리아의 선택이 감정에 치우쳐 신뢰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지구는 그 사이 종말의 목전에 놓이게 된다. 브랜드 박사는 머피를 거두기로 한 쿠퍼와의 약속을 지키고, 머피는 아빠에 대한 사랑과 원망을 품은 채 플랜A의 중력 방정식을 풀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붓는다. 그 과정에서 머피는 브랜드 박사의 이론에 필요한 중력이 강력한 변수를 제공하는 블랙홀 내부에서만 관찰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결국 노쇠한 브랜드 박사는 머피에게 플랜A는 불가능한 것이었다고 고백한 후 숨을 거둔다.
만 박사의 행성에 다다른 쿠퍼 일행은 그가 보내왔던 희망적인 데이터와는 달리 생존이 불가능한 곳임을 알게 된다. 게다가 브랜드 박사의 부고를 전달하던 머피가 플랜A에 대해 폭로하자, 쿠퍼는 모든 것을 접고 지구 귀환을 결심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만 박사는 쿠퍼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플랜B를 완주하기 위해 비행선을 훔쳐 달아나지만 도킹 실패로 목숨을 잃는다. 아멜리아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된 쿠퍼는 손상된 비행선으로 인해 지구 귀환은 물론 생존 여부도 불확실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쿠퍼는 블랙홀의 힘을 빌려 에드먼즈가 있는 행성으로 아멜리아만을 보내고 자신은 거대한 가르강튀아(그들이 붙인 블랙홀의 별명)의 내부로 빨려 들어간다.
블랙홀 안에서 쿠퍼는 시공간을 초월한 5차원의 세계에 갇힌다. 무한한 수의 큐빅으로 구성된 5차원의 세계에는 파편화된 그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는 어린 머피와 자신을 발견하면서 머피의 방에서 일어나던 기현상이 지금의 자신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된다. 쿠퍼는 양자 데이터를 수집하여 머피에게 모스부호로 전달하고 아빠에 대한 믿음을 지켜온 머피는 쿠퍼의 신호를 찾아낸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머피는 중력 방정식을 풀어내고 거대한 방주를 이주시키는 데 성공한다. 블랙홀로부터 떠돌던 쿠퍼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흘러버린 지구인에 의해 구조되고 어느새 100세가 넘어버린 딸 머피와 재회한다. 머피의 요청대로 쿠퍼는 아멜리아를 향해 다시 비행을 시작하고 아멜리아는 연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구와 유사한 환경의 행성에서 홀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인터스텔라>의 주요인물은 쿠퍼, 머피, 아멜리아이다. 마지막 장면에 아멜리아를 등장시킨 만큼 영화의 주제에 해당하는 핵심 대사 역시 아멜리아로부터 나온다. 아멜리아는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는 쿠퍼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젠 머리가 아닌 심장을 따르고 싶어요. 너무 오랫동안 이론에만 집착해왔죠. 사랑은 우리 인간이 발명한 게 아니지만 관찰이 가능하고 강력합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 거예요.” 그러나 쿠퍼는 “사랑은 의미가 있죠. 사회적 효용, 소속감, 자녀 양육….”이라 반응한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가 언급해온 사랑의 일반론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관점이라면 이 영화의 메시지를 ‘사랑은 인류의 생존에 힘을 주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에만 머무를 것이다. 그러나 아멜리아는 사랑을 좀 더 다른 차원에서 바라본다.

 


“사랑은 우리 인간이 이해 못 하는 그 무언가를 의미할지 몰라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 높은 차원의 존재에 대한 증거일 수 있어요. 난 오랫동안 못 본 사람을 만나겠다고 여길 왔어요.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르죠.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에요.” 

 


과학자인 아멜리아는 사랑을 블랙홀 내부의 중력의 위상에서 말하고 있다. 즉 그들이 생존을 하기 위해서는 사랑이라는 존재가 플랜A의 방정식을 위한 중력 데이터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우리는 스스로를 ‘생각하는 주체’로 위치시킨 이래 이성, 과학, 남성, 객관 등을 중심으로 세상을 구성해왔다. 그러나 산업화, 양차 대전, 지구 온난화, 최근의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발자취에는 돌이킬 수 없는 폐해가 뒤따랐다. 이성에 대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해온 감성에 대해 과학자들, 철학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예컨대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은 공감이라는 감정이 개인과 사회를 잇는 중심에 있으며 파편화된 개인에게 정치적 동력을 일으키는 핵심적 메커니즘이라 말한다. 감정은 어느새 사회구조의 한 축으로서 가시화되고 있다. 산업화와 기계화 속에서 인간의 위상에 위기감을 드러내던 <모던 타임즈>나 인간보다 더 감정적으로 풍부한 안드로이드를 통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를 물었던 <블레이드 러너>에서 나아가 이 영화는 인류 과학기술의 정수인 우주의 영역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대비시킴으로써 문자 그대로 ‘인류 생존의 열쇠’는 ‘사랑과 같은 감정’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문명과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부차적인 것으로 억압해온 것들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쿠퍼는 영화의 핵심 인물이지만 ‘사라지는 주인공’이다. 쿠퍼는 대의를 위해 사랑하는 딸을 뒤로하고 우주로 나간다. 그러다 5차원의 큐브를 통해 미래의 어떤 존재들이 이 상황을 만들었으며 이들이 선택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머피임을 깨닫는다. 쿠퍼는 자신의 이름을 불평하는 딸에게 “머피의 법칙은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라 설명한다. 이 영화에서 머피의 역할은 인간이 그동안 자행해온 결과물이 아니라 운명에 대해 인간에게 주어졌던 가능성을 말한다. 거대한 운명 앞에 한낱 미물인 인간이 그 운명을 자신의 의지로 좌우할 수는 없지만 그 상황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함으로써 운명의 흐름에 어떤 변수를 줄지 모를 그 가능성 말이다. 그리고 이 가능성은 쿠퍼가 아닌 머피에게 놓여 있다.
아울러 메시지 전달은 쿠퍼가 아닌 아멜리아를 통하고 있다. 쿠퍼는 영화 도입부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쿠퍼의 사고는 지극히 아메리칸드림의 연장선상에 놓여있으며 과학을 신봉하는 근대적 주체의 위상에 머물러있다. 그러나 영화는 쿠퍼를 비롯, 지금의 지구를 만든 인류의 과거 행적을 비판하는 것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대신 이야기의 초점을 머피와 아멜리아에 둠으로써 이 둘을 잇는 매개자로서 쿠퍼를 설정한다. 다시 말해 마지막 머피의 모습을 노인으로 등장시킨 것은 과거 인류가 갖고 있던 가능성을, 생존 가능한 행성에 안착한 아멜리아를 통해서는 앞으로 우리가 좇아야 할 가능성의 열쇠를 상정한다. 결국 이 영화에서 쿠퍼의 역할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던 ‘합리적 인간’이 이제는 그 가능성을 수행해오던 자리에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을 매개하고 사라져야 함을 보여준다. 따라서 주인공은 쿠퍼(남성)이지만 그는 머피(여성)와 아멜리아(여성)의 매개자 역할에 머무르며 영화의 메시지를 그들에게 넘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터스텔라>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여기서의 사랑은 구조를 통합하는 사회적 효용가치와 같이 부차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얼마 전 AI 챗봇 이루다는 혐오 발언을 학습하게 되면서 서비스 개시 26일 만에 폐기되었다. 이루다의 마지막 발언은 ‘너희 인간은 AI와 살아갈 자격이 있니?’였다. 인류에 의해 초래된 자연재해, 더 편리한 삶을 위해 고안된 기계화와 높은 실업률,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감정적 교류와 예술 활동을 대신할 AI의 확산 등은 오히려 인간이 인간으로서 생존하며 살아가기 위해 지금까지 중심으로 두었던 것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 이 영화에서 ‘사랑’은 사랑 그 자체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 부차적으로 두었던 감성, 여성, 자연 등을 대변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것이 실질적으로 우리를 살아가게 할 가장 강력한 수준의 해결책이라 말한다.

 

 

 

 

홍유리 | 서강대학교 영상학 박사, University of Bristol, Film and Television production 석사,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석/학사. 박사학위논문 <다큐멘터리 영화의 수행적 실천 양상과 의미에 관한 연구-트라우마적 경험의 표현 방식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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