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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202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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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문파문학 2020 여름호 기획특집] 이근화 - 경계에 선 존재들, 그리고 시의 날개 경계에 선 존재들, 그리고 시의 날개 마스크를 쓴 봄이 왔다. 새장에 갇힌 새처럼 밖을 내다본다. 어느 아침 아이들은 창밖을 보며 와, 나비다. 나비가 날아다녀요, 그런다. 10층 높이에 나비가? 설마. 흩날리는 벚꽃 잎이다. 그런데 정말 나비처럼 보인다. 제법 환상적이다. 얘야, 그건 꽃잎이란다. 아니야, 나비야. 정말 나비. 이 삶이 갑자기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뿌옇게 흐린 봄의 대기로 폴폴 날아다니는 저건 아이에게 나비로 기억될 것인데, 더 이상 꽃잎이라고 바로 잡지 않았다. 마스크를 쓴 봄조차 실감이 나지 않는 판에 누가 누구를 가르치고, 바로잡을 것인가 말이다. 생물학자이자 철학자이며 페미니스트인 도나 해러웨이는 인간중심주의 구도를 넘어서기 위해 유인원, 사이보그, 앙코마우스와 같은 혼종적 존..
[계간 문파문학 2020 여름호 기획특집] 이병국 - 시라는 장소에 관한 짧은 시론 시라는 장소에 관한 짧은 시론 1. 김수영에 의해 재주도 없고 시인으로서의 소양도 없으며 경박하고 값싼 유행의 숭배자라 평가 절하된 박인환으로부터 시작해야겠다. 박인환은 1926년 강원도 인제군에서 태어나 해방이 된 해에 종로 3가 낙원동 입구에 서점 ‘마리서사’를 경영하기 시작하여 이듬해 시 「거리」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1956년 31세로 숨을 거둘 때까지 전후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하였으나 대체적으로 경박함과 겉멋 든 시들로 센티멘털리즘에 경도된 시인이라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해방직후에 발표한 시들은 대부분 현실 참여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후에 발표된 그의 시를 한국전쟁 경험으로 인한 결과로 도피적 낭만성으로 침잠했다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
[계간 문파문학 2020 여름호 기획특집] 윤의섭 - 지저귀는 새의 나이 지저귀는 새의 나이 1. 신인-새 시를 쓸 때도 그렇지만 주어진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자 하는 강박으로 인해 이번 기획특집 주제인 ‘현대시 속에 날아든 새’라는 포괄적인 틀에서조차 나는 자유롭지 못했다. 나름의 궁리를 통해 나는 ‘날아든 새’를 현대시의 영역 밖에 있는 존재로부터 끌어오지 않고 ‘시인’이라는 문학적 영역에 속한 존재로부터 소환하기로 했다. 이렇게 정하고 나니 우선 2020년대에 들어서서 새롭게 등장한 신인 시인(이하 신인으로 호칭) 몇몇이 어쩌면 ‘현대시 속에 날아든 새’가 아닐까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물론 이 신인-새의 부리엔 시가 물려 있다. 거론할 신인을 떠올려 보다가 실제 ‘새’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가끔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한번도 떠올려보지 못한 의문이다. 대략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