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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마당/2021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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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문파문학 2021 봄호 수필마당] 은영선 - 잘 먹어야 하는 것들 잘 먹어야 하는 것들 사람이 잘 먹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음식! 잘 먹어야 한다. 잘 먹는 게 뭘까? 비싼 것을 많이, 자주 먹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좋은 것을 맛있게, 감사하게 먹고 소화를 잘 시켜야 한다. 그럼 좋은 건 뭘까. 좋은 기운이 담긴 것. 엄마의 정성 같은 것? 꼭 엄마가 아니라도 누군가의 정성이 담긴 것. 씨앗을 심고 키우는 사람의 마음, 가축을 먹이고 돌보는 사람의 마음도 다 해당이 될 것이다. 현대에는 엄마가 만든 음식보다 공장에서 기계가 생산해 준 음식이 많다. 이들도 감사하게 먹는다. 거기에도 정성이 들었겠지. 나의 존재에 필요한 몸과 마음을 유지해 주는 연료이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먹은 것을 잘 흡수해 에너지로 잘 쓰이도록 스스로도 정성스레 소화해야 한다. 마음! ..
[계간 문파문학 2021 봄호 수필마당] 전영구 - 몸 따로, 마음 따로 몸 따로, 마음 따로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행동을 하고 그 행동이 본인 스스로도 이겨 낼 수 없는 부끄러움을 동반한다면 서둘러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특히 뇌리에서 일어난 일이면 지워 버리면 그만이지만 결과물이 보이는 행동이었다면 흑 역사를 지우기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사소한 일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그저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자신조차도 미워질 때 일어나는 생각과 다른 행동은 허탈함에 한동안 여린 영혼조차 상처를 받게 만들기도 한다. 사랑하는 연인의 변심으로 이별을 하게 되면 한동안은 시선 속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게 된다. 드라마에서 달달한 언어를 건네며 사랑하는 연인들이 나오는 장면을 볼 때마다 마치 못 볼 것을 본 듯한 표정으..
[계간 문파문학 2021 봄호 수필마당] 김혜숙 오늘도 살았다, 휴~ 오늘도 살았다, 휴~ 사람들을 피해 숨어들었다가 한 해가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나는 아직도 어리둥절합니다.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대역병, 코로나의 두려움은 현재도 세상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역병이 돈다는 소문을 듣고 잔뜩 움츠렸던 때를 떠올립니다. 문밖출입을 삼가고 모임마다 못 나간다고 유난을 떨었어요. 대신 정신적 여행이라도 신나게 해보자며 책나라 탐험에 나섰지요. 책 틈으로 세상을 탐구하면서 활력도 되찾은 듯했고 깨달음의 순간마다 충만감이 찾아왔습니다. 생각이 정리되는 듯하면 자연스럽게 글로 남겼지요. 이게 일석삼조네, 하며 기쁨에 들뜨기도 했어요. 그러저러 몇 달이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내 삶이라는 거대한 바다는 책을 읽고 수필을 쓰는 것만으로는 순항이 어려웠어요. 코로나19의 위세가 온 세상을..
[계간 문파문학 2021 봄호 수필마당] 안윤자 - 사대문 밖 마을 사대문 밖 마을 은평구 주민이 되었다. 서울 시내를 벗어나 생활한 지 9년 만의 귀환이다. 수십 년간을 명동과 청량리, 강남구에서 터를 잡고 살았으니 같은 서울의 하늘 밑이라 해도 이곳은 꽤나 낯설다. 애초의 숙원으로는 정년퇴직을 하면 사대문 안으로 들어가서 살아야지, 벼르고 꿈을 꾸었다. 궁성이 잔재한 옛 도성의 큰 대문 안에서 역사의 공기를 호흡하고 궐 마당을 후원 삼아 들락거리며 정온히 살고 싶었다. 한데 다시 돌아온 내 거처는 도성 밖 한양의 진산인 북한산 아랫동네다. 소망을 비켜선 시계, 사대문 바깥에서 궁을 바라기 하는 형상이라고나 할까. 요즘 나는 촌티가 폴폴 묻어있는 이 소박한 마을에 정을 붙여가는 중이다. 은평의 간이역 같은 허름한 역사에서 지하철을 타고 수 분 후면 궁궐의 대문 앞에 가..
[계간 문파문학 2021 봄호 수필마당] 김수자 - 명지바람결 같은 마음으로 명지바람결 같은 마음으로 눈이 내린다. 소담스러운 눈 송이로 설화(雪花)를 피워 준다면 그 운치 즐기는 맛도 있으련만, 짚불 불티 날리듯 눈발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각박한 세사(世事)를 닮은 건지 내리 는 눈마저 옹색하다. 마치 생각 없는 말 툭툭 던져 설화(舌禍)를 일으켜 관계를 서먹 하게 하는 일처럼. 인간의 두 얼굴 같다. 선한 얼굴과 악한 얼굴. 한없이 참을 줄 알다가도 건드리 면 폭죽처럼 터지는 시한폭탄일 때도 있다. 후한 것 같아도 쩨쩨하고 너그러우 면서도 옹졸하고 푸근하면서도 쌀쌀하다. 관계 속에 이루어지는 게 우리네 삶인 데 어떤 연유로 토라지고 삐걱대다가 급기야 미워하는 마음으로 사이가 멀어지 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앙금이 생기면 치유하기 어려워 괴롭고 힘들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