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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마당/2021년 봄호

[계간 문파문학 2021 봄호 수필마당] 은영선 - 잘 먹어야 하는 것들

잘 먹어야 하는 것들

 

 

사람이 잘 먹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음식! 잘 먹어야 한다. 잘 먹는 게 뭘까? 비싼 것을 많이, 자주 먹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좋은 것을 맛있게, 감사하게 먹고 소화를 잘 시켜야 한다. 그럼 좋은 건 뭘까. 좋은 기운이 담긴 것. 엄마의 정성 같은 것? 꼭 엄마가 아니라도 누군가의 정성이 담긴 것. 씨앗을 심고 키우는 사람의 마음, 가축을 먹이고 돌보는 사람의 마음도 다 해당이 될 것이다.
현대에는 엄마가 만든 음식보다 공장에서 기계가 생산해 준 음식이 많다. 이들도 감사하게 먹는다. 거기에도 정성이 들었겠지. 나의 존재에 필요한 몸과 마음을 유지해 주는 연료이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먹은 것을 잘 흡수해 에너지로 잘 쓰이도록 스스로도 정성스레 소화해야 한다.
마음! 이것, 잘 먹어야 한다. 한 번 잘못 먹으면 나와 남과 세상을 괴롭힐 수 있다. 태 안에 아이를 가진 어머니의 마음으로 늘 바르고 곱게 먹어야 한다.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이려는 어머니의 노력처럼 나 자신을 늘 태교한달까. 예쁜 마음을 먹으면 예뻐지고 못된 마음을 먹으면 못돼지니 그야말로 사람은 마음 ‘먹은’대로 만들어진다.
비뚤어진 마음을 먹었다가 몸도 상하고 마음도 상했던 일, 나에겐 제법 있었다. 내 안에서, 내가 먹는 것을 그대로 받아먹는 나의 ‘자아’에게 어떤 마음을 먹여야 할까. 선한 마음을 먹이고 그 마음을 잘 소화하도록 열심히 도와야겠다.
나이! 이것도 잘 먹어야 한다. 이것 잘못 먹으면 손가락질을 받는다. 나잇값을 못 한다느니, 나이를 어디로 먹었느냐 느니 핀잔을 듣는다. 나이를 잘 먹으면 어릴 때 못 가졌던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다. 좋은 습관, 바른 성품, 동글한 성격, 부드러운 인상, 고통을 견디는 힘, 베푸는 손, 소중한 사람들, 살아온 모습을 기록해 주는 주름살까지도. 어릴 때 우러러보며 갖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잘못 먹으면 가졌던 것도 다 잃게 된다. 건강, 사람, 재물, 희망, 행복.

그럼, 나이를 잘 먹는다는 건 뭘까. 스스로에 대해 조금씩 알고, 부족한 점을 조금씩 채우고, 세상과 시간을 받아들이는것? 나이를 잘 ‘드신’ 어르신들을 뵈면 참 부럽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예쁜 어린이보다 훨씬 멋지다. 아름답다.

친구들과 어떻게 하면 나이를 잘 먹을 수 있을까 자주 이야기한다.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잘 소화해서 나날이 성장하자는 이야기들이다. 50이 된 후 몸 고장이 많아지니, 나이는 일단 운동에 꼭 비벼 먹자는 이야기도 한다. 나이
는, 완전 자동으로, 참 정확하게 꾸준히 오래도록 먹고 있는데 여전히 소화가 어렵다. 나이를 소화하는 위장을 따로 구비해야 하나 싶을 만큼.

나이 먹으면 왜 점점 배가 나올까. ‘먹었으니까’ 배가 나온다. 게다가 소화가 잘 안 되면 뱃속에 그대로 고여 있으니 더욱더 불룩해진다. 먹은 나이가 복부에 집중적으로 고여 있지 않도록 잘 소화하려면? 나이 먹으며 얻은 지식과 경험을 주변과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고, 가볍게 나눌 수 있도록 맛있고 쉽게 만들어 부지런히 나누어 주면 어떨까. 나의 전신뿐 아니라 내 주변으로까지 순환이 잘되지 않을까? 나이를 통해 얻은 깨달음들을 깨소금에 버무려 나누어 준달까!

 

 

 

 

 

은영선 | 2019년 『한국수필』 등단. 성우, 방송인, KBS 아카데미 성우반 강사. 저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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