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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마당/2021년 봄호

[계간 문파문학 2021 봄호 수필마당] 김수자 - 명지바람결 같은 마음으로

 

명지바람결 같은 마음으로

 

 

 

눈이 내린다.
소담스러운 눈 송이로 설화(雪花)를 피워 준다면 그 운치 즐기는 맛도 있으련만,
짚불 불티 날리듯 눈발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각박한 세사(世事)를 닮은 건지 내리
는 눈마저 옹색하다. 마치 생각 없는 말 툭툭 던져 설화(舌禍)를 일으켜 관계를 서먹
하게 하는 일처럼.
인간의 두 얼굴 같다. 선한 얼굴과 악한 얼굴. 한없이 참을 줄 알다가도 건드리
면 폭죽처럼 터지는 시한폭탄일 때도 있다. 후한 것 같아도 쩨쩨하고 너그러우
면서도 옹졸하고 푸근하면서도 쌀쌀하다. 관계 속에 이루어지는 게 우리네 삶인
데 어떤 연유로 토라지고 삐걱대다가 급기야 미워하는 마음으로 사이가 멀어지
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앙금이 생기면 치유하기 어려워 괴롭고 힘들어한다. 단
순한 논리로 그 생각에서 벗어나면 된다. 그러나 감정이 개입되면 이성만으로는
어쩔 수 없다. 아플 만큼 아프고 괴로워할 만큼 괴롭고 나서야 쓸데없는 감정의
소모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날밤을 새웠던 그 많은 시간들이 얼마나 허망하고
부질없었나 하는 것을.
나를 내려놓고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감정의 구속에서
나를 풀어 놓는 홀가분한 그 기분, 용서는 해방이다. 그래서 감정은 스스로 녹아
내리지 털어서 떨쳐 버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새해다.
명주결 같은 보드라운 마음으로 새봄을 맞으리라.

 

 

 

 

 

 

김수자 | 1982년 『한국수필』, 1983년 『시조문학』 등단. 시조집 『산나리』 외 6권. 수필집 『놓친 열차보다 아름다운 것』, 『사과 향기』. 한국시조시인협회상, 숙명문학상, 전라시조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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