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마당/2021년 봄호

[계간 문파문학 2021 봄호 수필마당] 김혜숙 오늘도 살았다, 휴~

오늘도 살았다, 휴~

 

 

사람들을 피해 숨어들었다가 한 해가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나는 아직도 어리둥절합니다.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대역병, 코로나의 두려움은 현재도 세상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역병이 돈다는 소문을 듣고 잔뜩 움츠렸던 때를 떠올립니다. 문밖출입을 삼가고 모임마다 못 나간다고 유난을 떨었어요. 대신 정신적 여행이라도 신나게 해보자며 책나라 탐험에 나섰지요. 책 틈으로 세상을 탐구하면서 활력도 되찾은 듯했고 깨달음의 순간마다 충만감이 찾아왔습니다. 생각이 정리되는 듯하면 자연스럽게 글로 남겼지요. 이게 일석삼조네, 하며 기쁨에 들뜨기도 했어요.
그러저러 몇 달이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내 삶이라는 거대한 바다는 책을 읽고 수필을 쓰는 것만으로는 순항이 어려웠어요. 코로나19의 위세가 온 세상을 목 조르고, 세계 여러 나라 정부들이 자유와 인권을 제한했습니다. 고슴도치처럼 서로의 곁을 내어주지 않는 우울한 세상이었지요.
어디든 해방구가 필요했습니다. 돌림병이 퍼지는 일만은 막아야 했지만, 내 존재가 약동할 수 있는 방법을 필사적으로 고민했어요. ‘마음속 생존 본능은 아름다운 자극에 의해 촉발된다.’ 니체의 말입니다. ‘아름다운 자극’. 이거다 싶었죠. 사람이 모인 곳 대신 예술이 모인 곳을 찾아가면 되지 않을까요.
대부분의 예술마당이 개점휴업 상태였습니다. 관람객을 제한하고 소독과 안전 규칙을 겹겹이 마련해둔 문화공간을 찾았어요. 대부분 사전 예약이 필수였습니다. 이런 곳이라면 당연히 적자일 수밖에요. 그런 손해를 감수해 가며, 터져 나오는 예술의 본능과 안전한 공동체의 공존을 실험하는 그들이 고마웠습니다. 소명이라도 받은 듯 방역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 애쓰는 관객들 모습에 울컥했습니다. 내 마음 같구나, 갓 낳은 핏덩이를 지켜내듯, 이들 모두에게 간절함이 느껴졌습니다. 내가 그들과 한 공간에 있다는 게 감사했습니다. 이런 간절함이 모인다면 일상도 아주 조금씩,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겠지요.
나는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2020년은 잔인했지만, 새로이 찾아온 생명이 성장하고 있었지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아가의 모습에 푹 빠져들었지요. 저에게 찾아온 큰 선물입니다. 까르륵 웃으면 우리 가족은 파안대소하고 맙니다. 언제 이렇게 웃어보았나 싶어요. “아기 상어 뚜루루뚜루… 신난다 뚜루루뚜루… 노래 끝. 오예~” 노래가 끝나면, “오 예~!”를 따라 팔을 높이 들고 흉내 내는 손녀가 사랑스러워 하트 팡팡 날립니다. 아기 상어 이름은 ‘올리’입니다.
올리네 가족은 아빠와 엄마, 할아버지와 할머니입니다. 우리집의 올리 헬륨풍선은 아가의 친구입니다. ‘핑크퐁 아기 상어’ 영상이 유튜브 사상 최다 기록을 매일 갈아치우고 있다네요. 미국 빌보드 차트,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에도 정상급으로 올랐다니 아가의 가족과 동무들이 엄청 많아졌네요. 기쁜 소식입니다.
미술관에서 뜨거운 가슴으로 지켜낸 이타와 배려의 공동체가 용케도 이 어린 아이의 건강을 지금까지 지켜주었다는 사실에 자부심과 안도감을 느낍니다.

겨울 햇살이 실내로 스며듭니다. 햇빛을 조그만 손으로 가렸다 내리며 손녀는 “까꿍”합니다. 나도 빨리 정다운 이들과 까꿍 놀이를 하고 싶습니다. 아가는 뭐가 그리 재미난지, 해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음을 터뜨립니다. 이런 모습이 꽃이고 별입니다. 아이와 함께 놀면 불안도 걱정거리도 안개처럼 사라집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지복의 순간이 아닌가요.

암울한 이 시기에 책나라 탐험, 예술마당 산책을 이어가야 하겠지요. 노래 부르기도 건강에 좋다지요. 손녀가 고개를 젖히고 까르르 웃는 동안, 나라도 “뚜루루뚜루” 하며 후렴구를 신나게 불러야겠습니다. “노래 끝, 오예~”가 나오기 전에.

 

 

 

 

 

김혜숙 | 1996년 『한국수필』 등단.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