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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마당/2021년 봄호

[계간 문파문학 2021 봄호 수필마당] 전영구 - 몸 따로, 마음 따로

몸 따로, 마음 따로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행동을 하고 그 행동이 본인 스스로도 이겨 낼 수 없는 부끄러움을 동반한다면 서둘러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특히 뇌리에서 일어난 일이면 지워 버리면 그만이지만 결과물이 보이는 행동이었다면 흑 역사를 지우기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사소한 일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그저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자신조차도 미워질 때 일어나는 생각과 다른 행동은 허탈함에 한동안 여린 영혼조차 상처를 받게 만들기도 한다.
사랑하는 연인의 변심으로 이별을 하게 되면 한동안은 시선 속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게 된다. 드라마에서 달달한 언어를 건네며 사랑하는 연인들이 나오는 장면을 볼 때마다 마치 못 볼 것을 본 듯한 표정으로 신경질적으로 채널을 변경하고는 한다. 어둠이 찾아오면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이 술집 저 술집을 전전하며 괜한 화풀이를 술로 풀기도 했다. 그러다 취기를 스스로 자제하지 못해 옆자리에서 속삭이는 연인을 보면 시비를 거는 속 좁은 행동을 하기도 했다.
간헐적으로 스며드는 울분은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 없었다. 어쩌면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심약한 인간인지라 길을 지나다 예쁜 여인을 보면 반사적으로 눈동자가 돌아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스스로도 민망하여 가슴을 쥐어뜯는 웃지 못할 자학을 하고는 했다.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마음이 황폐해져가는 중에도 감정이라는 요물은 종종 나타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선택을 하게 한다.

다이어트라는 엄청난 프로젝트를 세운 후, 하루가 멀다 하고 즐기던 음주도 줄이고 야식의 유혹마저 과감히 물리치고 어렵게 견디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음식으로 보일 만큼 괴로움 섞인 치열한 자제력을 키워야 했다. 평소 즐겨보던 맛 기행 프로도 외면하고 친구들과의 술 약속도 줄여가며 실로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치 몽유병에 걸린 환자처럼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은 주방을 향하고 있었다.
작심한지 며칠도 안됐다는 한 가닥 양심은 있어서 마음속은 안 된다며 절규하는데 몸은 이미 그토록 저주하던 탄수화물 덩어리라는 흰쌀밥에 열무김치와 고추장을 듬뿍 얹어 밥을 비비면서 눈으로는 참기름을 찾고 있었다. 꿀맛이 이보다더 달콤할까 싶다. 날씬해 보겠다는 다짐도 물 건너 가버리고 그간 주린 배를 채우고 나니 부른 배를 쓸어내리며 순간의 판단을 후회하는 비애가 멋쩍게 했다.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인다는 것은 그만큼 의지가 약하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람이 가진 허술한 매력이기도 하다. 자신이 계획한 대로 실천한다면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라는 칭호는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인간다운 허세로 생각과는 다른 행동을 보이는 것, 상황은 슬픈데 웃음이 나는 아이러니처럼 가끔은 의지와 다른 자아를 바라보는 것도 낯부끄럽지만 재미있는 삶의 한 단면이 될 것이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자신이 계획한 일들을 실천하고 그 모든 일들이 원하는 대로 이뤄진다면 후회 없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전영구 | 2003년 『시대문학』 시 등단, 2013년 『월간문학』 수필 등단. 저서 시집 『후에』외 5권. 수필집 『뒤
돌아보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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