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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마당

[작가가 좋아하는 작가]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 시인 문정희

 

 

‘느슨한 검정 니트를 걸치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수갑같이 큰 팔찌를 끼고 길에 나서면 창작의욕이 불같이 솟아났다’는, 온갖 현란함을 압도하는 검은빛으로 걸어오는 시인이 있다.
문정희 시인의 외출은 트레이드마크인 머플러는 물론이고 아방가르드한 외투나 재킷, 벨트, 액세서리까지 블랙 파노라마로 무장된다. 웨이브를 풀어 헤친 머리, 눈꼬리를 강조한 메이크업은 차도르 속에 비밀을 감춘 여인처럼 긴장감을 뿜어내고 그녀에게선 여전히 야성의 바람이 분다.

 

‘내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길에 나서면/ 사람들은 멋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녀의 상처를 덮는 날개입니다/ 쓰라린 불구를 가리는 붕대입니다’ - 「머플러」 중

 

문 시인에게 옷과 장신구는 사치가 아닌 자유와 고독의 표현이다. 일종의 글벽일까. 그는 시를 쓸 때도 몸의 일부처럼 머플러를 걸치고 때로는 발가락에 반지를 끼워주기도 하는 의식을 치른다. 스스로 초라하면 시어도 안 나온다는 고백은 절대고독의 밀실을 느끼게 한다. 자신을 까마귀 족이라 할 만큼 검정색을 좋아하고 디자인은 전위적이고 비상식적인 스타일, 이를테면 팔 한쪽이 잘렸거나 겨드랑이에 구멍이 뚫린 미친 옷의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를 즐긴다.

 


‘나에게 옷은 삶의 투쟁을 위한 투우사의 보자기다. 자유와 고독, 문학의 투쟁에 어울리는 옷을 만들어 주는 디자이너를 만날 때면 와락 사랑을 느끼고 바람둥이처럼 정신없이 탕진의 지갑을 연다.’ - 에세이 「투우사의 옷」 중

 


이 격정의 시인에게 매혹당한 것은 꽤 오래전이다.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는 「한계령을 위한 연가」를 읽고 첫눈에 반해 시인의 강좌를 찾아다니던 시절을 지나 기자로서 정식 인터뷰를 한 것이 꼭 십 년 전이다. 그날의 기록을 다시 찾아보니 “잠이 안 와, 마음도 들뜨고… 마치 연인과 데이트하고 온 것처럼 흥분도 되고… 도대체 왜 이러지? 무슨 이유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정희 시인 때문이더라구. 그녀가 뿜어낸 열정과 에너지에 전염이 되었어.” 이런 첫사랑의 고백 같은 증거가 남아 있다. 그의 시에 깔려있는 뜨거움은 화상을 입을 정도로 강렬했고 그만큼 풍성해지는 감성으로 시의 감미로운 쾌락에 빠지곤 했다. 여성의 미추에 관한 고정 관념을 기분 좋게 깨뜨리고 사랑과 인생의 비의秘意로 충만하던 대화에서 놀라운 기운을 받곤 했다. 그것은 가슴 가득 차오르는 기쁨과 삶의 기대를 심어주는 불꽃같은 에너지, 열정의 전염 같은 것이었다. 삶의 부조리함과 모순, 존재의 아픔을 서늘하게 드러내며 아름다운 죽비로 잠자는 내 영혼을 내리치곤 했다. 시인의 언어에 깃든 ‘자유’와 ‘고독’ 속을 유영하다가 우주의 먼지인 나의 존재를 보면서도 다시 사랑을 향한 열망에 사로잡히곤 했다. ‘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운’ 시인이다. 그것은 나만의 경험은 아닐 터. 시를 갈망하는 원시림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의 언어에 이끌려 시의 공간으로 들어섰던가.

 

아르헨티나 국제 시축제 (스페인어권 신문 『엘파이스』에 게재) 사진 제공 문정희


‘여자가 시를 쓰는 것은/ 불을 만지고 노는 것과 같다/ 몸속에 키운 천둥을 홀로 캐내는 일과 같다/ 소리 없이 비명처럼 내리는 비로/ 땅 위에 푸른 계절을 만드는/ 여자가 시를 쓰는 것은/ 비상벨을 눌러/ 감히 신과 키스를 하려는 것과 같다/ 이것은 죄는 아니지만 위험한 일이므로/ 문학사는 오랫동안/ 여자의 시를 역사 밖으로 던져 버렸다’ - 「불을 만지고 노는 여자」 중

 


남성 중심 문단에서 스스로 ‘슬픈 아웃사이더’를 자처하여 일찌감치 문단의 패거리 문화를 거부했던 그녀는 밀림의 맹수처럼 홀로, 거침없이 시의 길을 걸어왔다. 문협, 작가회의, 여성문학인회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고독하나 자유로운 홀로서기의 내공을 다졌다. 이미 세계를 무대로 그녀의 시집은 11개국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프랑스 시인이자 평론가인 미셸 메나셰는 “문정희는 국경을 초월한다. 그녀는 세계적인 반항자다. 그녀의 시는 범속한 묘사, 즉각적인 감각으로 우주적 메타포와 결합한다.”고 평했다. 프랑스에 출간된 시집 『찬밥을 먹던 사람』은 재판을 찍으며 프랑스 독자에게 사랑받았다.

 


‘아픈 몸 일으켜 혼자 찬밥을 먹는다/찬밥 속에 서릿발이 목을 쑤신다/ 부엌에는 각종 전기 제품이 있어/ 일 분만 단추를 눌러도 따끈한 밥이 되는 세상/ 찬밥을 먹기도 쉽지 않지만/ 오늘 혼자 찬밥을 먹는다/ 가족에겐 따스한 밥 지어 먹이고/ 찬밥을 먹던 사람/이 빠진 그릇에 찬밥 훑어/ 누가 남긴 무 조각에 생선 가시를 핥고/ 몸에서는 제일 따스한 사랑을 뿜던 그녀/ 깊은 밤에도/ 혼자 달그락거리던 그 손이 그리워/ 나 오늘 아픈 몸 일으켜 찬밥을 먹는다’ - 「찬밥」 중

 


찬밥을 먹으며 제일 따스한 사랑을 뿜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세계의 독자를 품는다. 일상의 편린 속에서 번뜩이는 예술적 순간을 포착해, 한국적 감성에 범세계적 보편성을 가미한 시 세계는 과연 국경을 초월한다. 그녀는 여성성에 대해 사회적 타자나 약자, 또는 제2의 성이 아니라 대지모(大地母)라며 생명의 원형임을 강조해 왔다.

 


‘딸아, 아무 데나 서서 오줌을 누지 말아라/ 푸른 나무 아래 앉아서 가만가만 누어라/ 아름다운 네 몸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미는 소리에 귀 기울여보아라/ 그 소리에 세상의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네가 대지의 어머니가 되어 가는 소리를’ - 「물을 만드는 여자」 중

 


생명에 대한 감수성 없이 좋은 시는 잉태될 수 없을 터. 대지모大地母로서의 여성성은 오줌 누는 행위에서조차 생명력을 부여하며 ‘귀한 여자’로 이끌었다. 그 웅혼하고 위대한 여성성의 생명주의에 용솟음치는 연대감을 감출 수가 없다.

 

2016년 프랑스 낭트 메종 드라포에지 초청시낭송 사진 제공 문정희


그가 살아온 1950년대 이후는 한국 현대문학사의 중요한 시기다. 시인은 사춘기에 겪은 4·19와 5·16, 군사독재에 저항하며 데모와 휴교로 점철된 대학 시절을 보냈다. 상처와 폭력의 시간 속에 제한된 자유와 표현을 감내하며 한 시인으로 성장했다. 국가불행시인행(國家不幸詩人幸)-불행한 국가를 고뇌하며 시인이 더 깊은 글을 쓸 수 있다-을 체득했기에 작가로서의 사회적 책무에도 고뇌했을 것이다.

 


‘정치가들도 시를 좀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군인 출신 대통령이 저녁 초대를 한 날/
청와대 뜰로 들어가는/ 신분증 번호를 대다 말고/ 나는 그만 돌아서버렸다//

나를 시인이라고 알지 마라/ 나는 글 창녀니라/ 죄 없는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며/

값싼 원고에 매달려 중노동으로 살아왔지만/ 그 순간 문득 시인이 되고 싶었다 (중략)//

그러나 곧 내 속에 숨은/또 하나의 얼굴이 기어 나왔다/ 그러고는 무슨 의연한 선비나/
서툰 운동권 같은 폼을 잡는다/나 군인 대통령의 청와대 초대를 거절했노라고/
은근히 그것을 선전하고/ 으스대고 싶어 전신이 마구 가려웠다’
 - 「초대받은 시인」 중

 


문 시인에겐 굴곡 많은 역사를 시인으로서 겪고 ‘살아냈다’는 자부심이 있다. 진정한 작가라면 권력, 명예, 평판 등에 저항하는 반권력 주의자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나이가 들면 진보에서 보수로 성향이 바뀐다는데 그는 보수신문에 하던 기고를 진보신문으로 옮겼다.
“시가 있었기에 어떤 권력이나 부 앞에서 주눅 들지 않았어요. 오로지 시만 보였습니다. 물론 마음속에는 화산과 태풍, 좌절과 절멸, 죄의식투성이로 살아가지만 적당히 에너지를 배분하지 않고 최선의 열정으로 삶과 문학에 임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제 쇠사슬을 풀어주어도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짐승처럼 나는 문학의 망루를 통해 세상을 보고, 오직 문학의 의자에서 자유롭고, 당당하고 고독합니다.”
문 시인의 도발과 관능, 불온과 광기가 번뜩이는 언어들은 긴장과 통쾌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그것은 기막힌 발상과 타고난 감각 조율로 또 하나의 카타르시스를 생산해낸다.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文字/“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 「응」 중

 

문정희 시의 정수를 느끼게 하는 ‘응’은 마치 시의 세례를 받은 듯한 순간이 그 모티브가 되었다. 어느 날 머리를 감다가 문자를 받고 젖은 손으로 간단히 “응.”이라고 답을 보냈는데 상대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이 순간에 시인은 폭탄보다 위력을 가진 호응의 언어가 ‘응’이라고 생각했다. 콧소리 같은 관능적 요소와 시각적으로도 상하 곡선 직선이 완벽한 조화다. 세계 어느 문자가 이토록 조화롭고 신비한가. 시인은 이렇게 ‘응’을 만들어냈다. 
시인에게 사랑은 에로틱한 열정이자 삶을 삶이게 하는 동력이다. 그는 자주 “나는 아낌없이 생의 순간을 사랑하고 싶었다. 나는 늘 타오를 때만이 진정한 목숨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유효기간이 짧은 것은 사랑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이 또한 그렇다.”라고. 

 

‘부드럽고 붉은 혀로 칼날을 핥듯이 금기와 위험에다 혀를 대는 존재, 창조를 위해 때로는 신성과 맞서는 존재가 바로 시인이다. 그는 고독과 광기로 생명을 유지하며, 영혼은 자유로워 세상에 편입되지 못하고 이상의 세계만을 떠도는 슬픈 아웃사이더다.’ 


- 에세이 「붉은 혀로 칼날을 핥는 시인」 중

 

문정희 산문집 『시의 나라에는 매혹의 불꽃들이 산다』 사진 제공 문정희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국제문학행사와 토론회, 세계의 유수 대학과 학회는 앞다투어 문 시인을 초청했다. 최근 발행한 산문집 『시의 나라에는 매혹의 불꽃들이 산다』(민음사)는 세계 곳곳에 머물며 시인들과 나눈 불꽃같은 교감과 영감의 예술적 일기다.
자신을 시단으로 이끌어준 미당 서정주의 임종을 지키며 비명처럼 떠올렸던 시 「그의 마지막 침대」의 배경, 소설가 박경리에 대한 추억, 김향안, 수전 손택과의 만남 등이 인상적이다. 그는 박경리를 보며 “어떻게 늙을까를 고민했던 그때 나는 선생의 모습에서 해답의 일단을 보았다. 늙은 여인은 안 보이고 치열한 작가가 보이는 삶, 삶과 문학을 그렇게 완성하면 좋을 것 같았다.”고 말한다.
“알피니스트는 산을 정복하지만 시인에게 정복은 없습니다. 영원한 등반만 있을 뿐이에요. 나는 50년을 문학이라는 산을 등반했어요. 이만하면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런데 꼭대기에는 허공과 이슬뿐이더군요. 어떠한 명예보다, 화려한 직업이나 지위보다 시가 보여준 허공과 이슬이 아름다워 보인다면, 근사해 보인다면 그 길을 가도 좋습니다. 그것이 시인의 운명입니다.”
그는 시인으로서 혼신을 다해 시인의 운명을 살았다. 하여 지금 이 순간 생애 가장 젊은 날인 오늘을 살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
고희를 넘긴 여인은 보이지 않았다. 10대에서 70대까지 한 번도 붓을 멈추거나 쉬지 않는 치열한 작가가 보일 뿐이었다. 찬란했다.

 

 

 

 

박미경 | 1993년 『월간문학』 수필 등단. 작품집 『내 마음에 라라가 있다』 『박미경이 만난 우리시대 작가』 외 다수. 동리 문학상, 동포 문학상 수상. 『내일신문』 미즈내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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