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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마당

[작가가 좋아하는 작가] 세상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최성각

Editor 박미경

 

작가는 왜 글을 쓰는가. 작가의 책무는 무엇일까. 문학의 기능은 또 무엇일까.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세상에서 좋은 문학’, ‘좋은 작가를 어떻게 가늠해야 할까.

사르트르는 그의 저서 『문학이란 무엇인가』 에서 작가의 기능은 아무도 이 세계를 모를 수 없게 만들고, 아무도 이 세계에 대해서 나는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도록 만드는 데 있다.“고 했다. 결국 작가는 시대적 상황이나 위기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거니와 그것을 깨우치게 하는 작가의 기능이야말로 좋은 작가에 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무 해 전에 최성각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선배의 사정으로 소설 창작 강의를 대신 하러온 그는 뜻밖에 동티모르 학살에 관한 동영상을 보여주며 이것이 당신들의 삶과 무관하지 않음을 뜨겁게 설파했다.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이 특별한 강의는 내게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주었고 문학의 깊이와 넓이를 다른 잣대로 가늠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는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만들어 새, 돌멩이, 지렁이 등 자연물에게 환경상을 드리는방식의 감수성 회복 운동을 전개했고 이 땅의 크고 작은 환경 재앙의 현장에서 아파하고 싸우며 그것을 문학으로 옮겼다. 지난 20여 년 동안의 그러한 고민과 노력들이 고스란히 담긴 그의 소설들에는 상계동 소각장 사건은 물론, 새만금 개발, 지리산 댐 소동, 천성산의 도룡뇽 소송. 부안 핵쓰레기장 사태, 사대강 개발 등 이 땅에서 벌어진 온갖 환경문제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시대의 절박한 사안에 분노와 직언, 눈물과 유머와 성찰로 빚어낸 글들은 녹색문학, 생태문학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작가이기 때문에 환경운동에 뛰어들었다는 최성각의 독자가 된 것을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최성각 작가의 소년 시절 일화가 있다.

강릉이 고향인 그의 집에서는 돼지를 키웠다. 어느 날 어미돼지가 13마리 새끼 돼지를 낳았는데 어미의 젖은 12개뿐이었다. 아버지는 가장 약한 새끼를 남대천에 내다 버린다. 새끼돼지가 냇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장면을 본 소년은 한밤중에 일어나 남대천 하류에서 낑낑대는 새끼 돼지를 찾아내 돼지막에 다시 넣었다. 그러나 이튿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아버지는 그 돼지를 다시 버렸다. 산 새끼돼지를 버리는 아버지의 행위를 이해 할 수 없던 소년은 이 일을 구독하던 어린이신문에 투고, 입상했는데 이 예사롭지 않은 소년이 환경 운동을 하는 소설가가 되었다.

80년대 초반 탄광촌의 교사로 재직하는 동안의 경험을 소설로 쓴 <잠자는 불>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된 뒤 <사막의 우물 파는 인부> <부용산> <거위, 맞다와 무답이> <쫓기는 새>등 소설집과 엽편소설만을 묶은 <택시 드라이버>, 에세이집 <달려라 냇물아> <날아라 새들아>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등 여러 장르의 책을 상재했다. 최성각의 글쓰기는 소설이라는 장르에만 고착되지 않고 생태소설, 에세이, 동화등으로 그 외연을 넓혀왔다. 도식적인 장르의 구속에서 벗어나 작가로서 절박하다고 느낀 현실에 대한 그만의 대응방식이다.

작가는 여러 유형이 있다. 산업사회를 회의하지 않은 인류가 필연적으로 맞닥뜨린 환경문제와 거기 맞바로 대응하는 내 글쓰기의 즉발성에 대해 나는 별로 우려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 걱정은 언제나 나의 분노나 안타까움이 아니라 그것이 표현에 이르렀느냐, 아니냐이다. 깊어진 걱정이 꽃이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막의 우물파는 인부> 머리글

작가로서 최성각의 관심은 환경문제와 글쓰기다. 그러나 그 궁극점은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이다.

나는 소설가이기 때문에 소설을 쓰지는 않는다. 쓸 것이 있을 때만 쓰며 이런 위기의 시대에 무사태평하게 소설 따위를 쓰고 있을 수는 없다며 에세이를 통해 세계의 거대한 폭력에 개입한 인도의 아룬다티 로이,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 루쉰과 에두아르도 갈리아노, 언어가 무기라고 호언했던 멕시코 사파티스타의 마르코스 부사령관, 권정생 선생 등을 예로 들어 진정한 작가들의 논픽션 혹은 에세이가 문학이상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당위를 설명한다. 더욱이 문학 장르에는 계급이 없건만 소설가만을 작가로 여기는 한국 문학판의 보수적인 장르 계급의 옹졸함에서 해방되어야 함을 피력한다.

 

 

그가 서울을 떠나 춘천시 서면 퇴골로 들어간 것은 세상을 망친 방식과 똑같이 굴러가는 주류 환경판에서 신속하게 거리를 두기 위해서였다.

환경단체는 지금보다 작아지고, 더 겸손해지고, 더욱 가난해져야 한다. 가난하면 배짱이 생기고 두려워 할 것이 없어질 것이다. 세상을 망친 자들과 어울리면서 그들과 같은 방식과 가치관으로 무슨 거창한 운동을 하겠다는 것은 애시당초 자기기만이었던 것이다.” < 날아라 새들아> 148

시위도 중요하지만 세미나니 간담회니 여럿이 몰려서 실의와 분노만 씹으며 자괴하며 사느니, 시골 밭고랑에 엎드려 김을 매고 땔감을 마련하고 짐승들과 같이 사는 것도 이런 생명 파괴의 시대에는 분명하고 확실한 저항의 몸짓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시민단체마저 권력화 되어 본질적이지 않은 일에 시간과 힘을 낭비하지나 않는가, 하는 그의 우려와 회의는 최근 수요집회를 주도했던 정의연대 윤미향 사건을 미리 내다본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끝없는 풍요와 성공을 좇는 세상을 향해 '여기 또 다른 삶이 있다'고 외친다. 닭똥과 개똥을 모아 비료를 만들고, 낡은 트럭과 함께 땔

감을 모으고, 밭의 김을 매다가 산에서 내려온 고라니를 망연히 바라보는 일에 감사하는 일이다.

그는 퇴골 연구소 마당 한편에 불편한 오두막을 지어 방문객들에게 불편체험을 통한 생태적 삶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곳의 불편은 별생각 없이 너무 많은 자원을 낭비하며 살아온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합니다. 더운물 콸콸 나오고 쓰레기 잔뜩 만들며 살았던 쾌적한 곳에서 다른 쾌적한 곳으로 이동하는 수평이동이 아니라 이곳에서는 짧지만 세상에 해를 덜 끼치는 수직 하강의 시간(Down shift)을 만나게 됩니다. 불편한 오두막의 적극적 불편은 생산적인 불편, 쾌적은 반문명적 쾌적, 난로에 불을 피우면서 우리는 색다른 충만감을 느끼게 됩니다.”

라며 불편의 아름다운 모토를 시도했다. 누군가 최성각을 가리켜 월든의 작가 소로에 비견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연구소 2층에서 지하로 연결되어 3만여 권의 장서가 분야별로 정돈된 그의 서가는 놀랄만큼 아름답다.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의 모습일 것이다라고 말한 보르헤스의 천국을 연상하게 하는 공간이다.

그는 저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에서 책은 나의 담요이고, 모닥불이고, 때로는 몽둥이였다고 했다. 책이 그의 삶을 어떻게 요동치게 했고, 그 책 덕분에 어떤 빚을 지게 되었는지, 책을 읽었기에 외면 할 수 없던 절절한 현실이 담겨 있다. 소설가 김성동은 최성각을 기절초풍하고 혼비백산하는 정신의 대공황시대에 한 점 등불 든 생명사상가로 명명하면서 공포소설보다 무서운 책이라는 추천사를 썼다.

허균과는 달리 살아있는 책벌레로서 나는 오늘도 시골의 여러 표 안 나는 일들을 마치고 나면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채워진 내 대단찮은 서가에 파묻혀 이 공간을 충분히 누리고 즐길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이 세상 모든 서가의 짧은 수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럴 때 나는 어쩌면 책을 사랑하고 있다기보다 삶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책이 가르쳐준, 책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삶이었다.” <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머리글

그의 서가 아래에는 어느 해 시월에 길에 버려졌던 고양이 시월이가 살고 있다. 때때로 주인에게 충성을 보여주기 위해 그의 신발 위에 쥐를 물어다 놓을 때면 난감한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또한 주말에 찾아오는 손녀의 손톱에 물들여줄 봉숭아꽃을 조심스레 따다가, 그 표정이 명심보감을 읽은 듯 의젓하여 붙여준 유기견 명심이의 밥을 챙기기도 한다.

그렇다. 뭇 생명을 자기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생명사랑이야 말로 녹색 감수성의 핵심이리니. 동물이든 풀이든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귀하게 연결이 되어있는지 그대로 느껴지는 작가 최성각의 풍경이다.

 

최성각 / 작가, 환경운동가. 1955년 강릉에서 태어났다. 중앙대 문예창작과와 동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으며 『강원일보』(1976)와 『동아일보』(1986)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90년대 초 상계동소각장 사건으로 환경 운동판에 투신, 90년대 말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창립해 새나 돌멩이, 지렁이, 갯벌의 조개, 자전거 등에게 풀꽃상을 드리면서 세상 사람들의 생명 감수성의 북돋음과 인식의 전환을 꾀해왔다. 그즈음 삼보일배’ ‘생명평화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교보환경문화상, 가천환경문학상, 요산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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