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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2020년 가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가을호 시마당] 이리영 - 메리고라운드

메리고라운드

 

 

낡아 빠진 오버롤을 입은 아이야,

네 손에 들린 잘 익은 토마토와 딱딱한 바게트 한 쪽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 마법 하루 종일 밤 냉장고에 죽은 고기들이 오래 핏빛을 잃지 않는 이유를 물었지 투명한 물병에 개미들을 수북이 빠뜨리며 풀을 뜯어먹던 말들이 달아나는 곳으로

 

길어지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두려울 게 없다고 속삭이는 해바라기 밭으로

반짝이는 펜던트들은 훔쳐

 

더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아 천천히 고개를 젓고

모든 것이 젖어버리는 빗속으로

 

커다란 눈으로 펄럭이는 이파리 사이로 높고 높은 지붕 위로

 

큰 장화를 신고 개울을 건너는 아이야, 바람에 부풀어 오르는 주름치마를 따라 아주 멀리, 더 멀리 가면

 

태어난 것을 잊을 테니

 

 

 

 

 

이리영 | 2018년 『시인동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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