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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당/2020년 가을호

[계간 문파문학 2020 가을호 시마당] 이춘 - 조그만 기억

조그만 기억

 

 

 

외진 길섶 댓돌 위에 서서

머리 위로 드리운 산사나무 여린 가지 하나를

왼쪽 가슴께로 당겨 잡고

셀폰 사진을 찍었다

떨며 잡고 있는 가지 끝에

짧은 순간 바람이 완강한 소리로 울었다

 

댓돌 내려서며 손을 놓아

허공으로 돌아간 가지 끝 이파리들의 출렁임이

먼 구름을 배경(背景)으로 차츰 잦아지고

소리만 남겨둔 채 바람은 멎었다

가던 길 이어가는 발걸음은

산사 꽃 흩날리는 전경(前景) 속에 들어갔다

 

한갓진 이 길섶에 잠시 와서는

소리 깊게 남기고, 바람이 떠난다

 

 

 

 

 

이춘 |2013년 계간 『문파』 등단. 시집 『답신』. 제12회 문파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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